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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07.19 [03:07]
<역사 탐방> 아일랜드 켈트족 ‘복음화의 선각자 성 패트릭’
 
소정현 기자

찬송가 내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성 패트릭 기려

패트릭 16살에 포로 노예생활 아일랜드 전도계기

 

성 패트릭 데이’ 1903년 아일랜드의 공식 공휴일!

수많은 원주민들 다신교 드루이드기독교로 개종!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섬에 가톨릭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자 주교로, 아일랜드의 역사와 가톨릭 신앙, 문화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영국 출신의 선교사이다. lt.ciwanekurd.net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통일찬송가 533)

 

(1)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에나 낮에나 주님 생각 / 잘 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2) 지혜의 주여 말씀으로서 / 언제나 내 안에 계십소서 / 주는 내 아버지 나는 아들 / 주 안에 내가 늘 함께 하네

(3) 세상의 영광 나 안 보여도 / 언제나 주님은 나의 기업 /주님만 내 맘에 계시오니 / 영원한 주님 참 귀하셔라

(4)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 만유의 주여 소망 되소서 아멘

 

소망을 주제로 한 찬양을 묵상하면, ‘내 맘에 주여 소망 되소서’(통일 찬송가 533) 이 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국 교회에서는 자주 부르지 않지만, 이 찬송은, 8세기 아일랜드의 전래 찬송 나의 소망이 되소서로 세계인의 애창 찬송이다. 5음계 3/4박자로 되어 있어서 우리 정서에도 잘 맞는다.

 

아일랜드 켈트족을 복음화 시킨 성 패트릭’(St. Patrick’s Day)의 신앙을 이어받은 아일랜드의 시인 댈런 포게일’(Dallan Forgaill, 530-598)이 위대한 신앙시를 남기게 되었고, 이 시는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계속 전승되어 오다가 1905년에 매리 번’(Mary Byrne) 이라는 여성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수 년 후 엘러너 헐’(Eleanor Hull, 1860-1935)에 의해 1912년에 지금 사용하는 형태의 찬송 가사로 다듬어지게 된다.

 

이러한 긴 역사를 가진 시가 아일랜드의 민요 선율과 결합되어 1919아일랜드 찬송가집’ (Irish Church Hymnal)에 출판됨으로써 기념비적인 찬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찬송곡명 슬레인’(SLANE)은 부활절 밤에 촛불집회로 아일랜드 왕에게 항거하여 맞서 싸운 성 패트릭의 기념 성지이다.

 

이 곡의 가사 탄생의 역사는 5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패트릭이라는 선교사가 있었다. 얼마나 뜨겁게 복음을 전했는지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개종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SAINT) 패트릭은 16살 때 아일랜드에 포로로 잡혀 가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6년 만에 풀려나와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성직자가 된 후 아일랜드를 잊지 못해 다시 아일랜드 땅을 찾아 선교사로 들어가 그곳에서 사역하면서 일생을 헌신하였다. 그는 후에 아일랜드의 최고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아일랜드 사람들은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를 성대한 축일로 지킨다.

 

▲  패트릭은 16살 때 아일랜드에 포로로 잡혀 가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6년 만에 풀려나와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성직자가 된 후 아일랜드를 잊지 못해 다시 아일랜드 땅을 찾아 선교사로 들어가 그곳에서 사역하면서 일생을 헌신하였다. christianhof.org 

 

(SAINT) 패트릭에 관한 일화가 있다. 당시 아일랜드의 족장은 그 나라 사람들이 지키는 고유 신앙 절기인 봄 축제의 횃불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다른 횃불을 올리지 못하게 명령하였다. 그러나 패트릭은 부활절에 왕의 명령을 어기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는 슬레인(Slane)이라는 언덕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횃불을 올렸다. 족장은 명령을 어긴 패트릭을 처형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 있는 믿음에 감동하여 그의 선교 사역을 허락하였다고 한다.

 

로마의 비통치 아일랜드 섬

 

(SAINT) 패트릭은 아일랜드 섬에 가톨릭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자 주교로, 아일랜드의 역사와 가톨릭 신앙, 문화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영국 출신의 선교사이다.

 

성 패트릭<당시 그의 이름은 수카트(Sukkat)>4세기 말인 387년경 영국에서 태어났다 쇠퇴하던 로마 제국의 속주인 브리타니아 세쿤다(현재의 영국 웨일스 서부)에서 로마계 지방 의회의 의원이었던 부유층 귀족인 부친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모친인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교회의 집사이기도 했다. 패트릭의 삶은 극적인 사건이 그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던 16세까지 상당히 평화로웠다.

 

고대 로마제국은 브리튼 은 지배했지만 아일랜드 섬은 통치하지 않았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아일랜드의 왕자가 브리튼 섬으로 망명 왔다가 귀국해서 권력을 장악했다고 짤막하게 서술했고, 로마인들이 아일랜드 섬에 접근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지배하지는 않았다. 일설에는 아일랜드 섬이 춥고 황량하고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로마가 영토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다. 어쨌든 덕분에 아일랜드는 켈트족의 고유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아일랜드 해적들은 16세의 패트릭을 포함해 많은 젊은이들을 납치해 배를 타고 아일랜드로 데려가 노예로 팔았다. 패트릭은 아일랜드에 도착한 후, 현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 군에 위치한 슬레미쉬 산에서 양과 소를 치는 밀초라는 아일랜드 족장의 노예로 일하게 된다.

 

그는 6년의 노예 생활을 세속적 삶에 치중했던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혹독한 체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가서 신앙을 전파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언어인 켈트어를 체득하여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파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과적으로, 이는 훗날 아일랜드에서 선교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켈트인들은 비록 개화된 문명인들은 아니었으나, 자연을 사랑하며 시와 노래, 상징을 즐기는 민족이었다. 성 패트릭이 노예로 지내면서 배운 켈트족의 언어와 문화는 그의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결정적 기반이 된다.

 

바이블의 스토리를 전할 때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켈트인들의 성향에 부합되게 무용담과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고 재미있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는 켈트족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며,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혜롭게 선교를 했다.

 

본인이 회고의 따르면, 종종 새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천사 빅터로부터 계시를 자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패트릭은 어느 날 꿈속에서 해안가로 가면 브리타니아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탈출하라.”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다. 이튿날 꿈에서 들은 말씀대로 아일랜드 탈출에 성공하여 꿈에 그리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왔다.

 

탈출에 성공한 뒤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아일랜드 백성들이 나타나 아일랜드로 돌아와 아일랜드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패트릭은 이 꿈을 잊지 않고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제르마노(Germanus)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드디어 패트릭은 아일랜드 선교를 위해 떠나 4353월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결국 패트릭이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을 때는 그의 나이가 이미 40이 넘었다.

 

이미 431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1세에 의해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 주교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주교를 계승하였다. 성 패트릭은 지역 추장들의 도움을 얻어내면서 주로 아일랜드의 서쪽과 북쪽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해 수많은 개종자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지 30년이 지난 461317, 성 패트릭은 선종하면서 아일랜드 가톨릭에서 존경을 받는 핵심 인물이 되었다. richkosh.blogspot.com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과 추장들을 과감히 만나 복음을 전하고, 여러 번 기적적인 섭리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아일랜드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이교도였던 아일랜드인들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가 되어, 아일랜드 고유 종교였던 켈트 다신교인 드루이드교’(druidism)는 거의 사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패트릭은 오랜 선교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교 부활절 전례와 라틴어 교육 등을 통해 아일랜드 교회를 로마 교회와 가깝게 만들었다. 아일랜드의 기독교화는 본격적인 역사시대로 접어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알파벳도 가져와 기독교를 본격 보급시키는 한편,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었다. 수도원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아일랜드의 구전문화와 고대 문학이 로마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세계사를 보면, 로마 교황은 아일랜드를 그 수하에 넣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교황 아드리안 4세가 1155년 영국 왕 헨리 2세에게 명한 칙령으로부터 발단되었다. 이에 헨리 왕은 1171년 강력한 군사력으로 아일랜드를 완전히 장악했다.

 

아일랜드인의 정체성 성 패트릭데이

 

성 패트릭’(St. Patrick)을 기념하는 축일인 317일이다. 1903년 성 패트릭의 날은 아일랜드의 공식 공휴일이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에서도 이 날을 두루 기념한다.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317일을 비공식적으로 성 패트릭 데이로 정해 기념한다.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지 30년이 지난 461317, 성 패트릭은 선종하면서 아일랜드 가톨릭에서 존경을 받는 핵심 인물이 되었다. 성 패트릭은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그의 축일은 그가 태어난 날이 아니라 그가 선종한 날에 거행된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다운(Down) 주에 있는 다운패티릭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패트릭 데이는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패트릭을 기리고 기념하는 종교 축제일뿐 아니라 아일랜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서로의 문화를 표현하고 즐기는 민족 축제적인 특성을 띤다.

 

전 세계적으로 성 패트릭’(St. Patrick)을 기념하는 축일은 317일이다.childrensbookworld.com   

 

주로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많은 동부의 대도시인 뉴욕과 보스턴의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 초록색 장식이 설치되며, 인근에 큰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 날 사람들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초록색 의상을 입고 성 패트릭의 세 잎 클로버 비유를 기억하고 초록의 조화로운 평화를 바라며 세 잎 클로버 배지를 달고 즐겁게 행진한다.

 

패트릭과 관련된 일화로 대표적인 것은 세 잎 클로버의 비유다. 아일랜드 켈트 이교도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의 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세 잎 클로버(토끼풀)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패트릭응 사람들에게 한 클로버에 세 잎이 붙어있듯 성부·성자·성령도 이와 같다.”,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의 가장 신비로운 진리인 삼위일체 교리가 직관적이며 감성적이고 생태적인 켈트인들에게는 그리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성 패트릭 자신의 글과 초기 전통을 기반으로 한 2020년 영화 ‘I am Patrick: Patron Saint of Ireland’는 아일랜드의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된 바 있다.

 

패트릭 자신의 글과 초기 전통을 기반으로 한 2020년 영화 ‘I am Patrick: Patron Saint of Ireland’는 아일랜드의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된 바 있다. cinemac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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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6/03 [00:4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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