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무엇이든 직접 증명되지 않으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blog.ipleaders.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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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직접적으로 증명되어야
현대는 최첨단 과학의 시대이다. 사회 계층의 최상위에 포진하는 과학은 본질상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여 ‘입증’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직접 증명되지 않으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현대 지성에 대한 모욕으로 느낄 정도이다. 합리적 토대 하에 제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영역이 전반적으로 확대되면서, 현대인들은 인간의 모든 일을 신과 연관시키던 규범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이탈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태도 변화는 모든 영역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세속화’라 한다.
▲ 세속화된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의 문제와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신의 개입과 관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youtube.com/watch?v=8vsIXJf232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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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의 문제와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신의 개입과 관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학교의 교과과정과 강의 내용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이러한 세속화의 영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또한 신앙인들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처럼 인식되고 있고, 자신의 나약성을 감추기 위해 신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라고 간주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질문은 비단 무신론자들만 던지는 질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도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면 때때로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걸까?’하는 질문을 뜻밖에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라는 본질적 이슈는 무신론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핵심적인 질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지구촌 현대인들은 전 분야에 걸쳐 장족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공허감과 무력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깊이 절감하고 있다. 범죄율은 날로 높아가고 자살율도 급증하고 있다. 인간들은 가공할 무기 체계를 개발시켜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역사 속에는 질서와 조화뿐만이 아니라 무질서와 부조리, 그리고 갖가지 재난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이고 양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세계 안에서 하느님은 어떤 의미로 창조주요 구원자요 완성자로서 인격체일 수 있는가?는 의문 또한 비켜갈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 현재 우리 사회의 지구촌 현대인들은 정신적 공허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깊이 절감하고 있다. rootsoflonelines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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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은 가공할 무기 체계를 개발시켜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고 있다. smithsonianma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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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보임이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창세기 1:1, 시편 14:1, 로마서 1:19-20)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더 강력한 증거이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는 그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 그를 전제하지 않고서 인간은 이 세상의 아무 것도 바로 알 수 없고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은 점진적이며 의존적이고 부분적이며 제한적이며 불명확하고 불완전하며 가변적이다. 하지만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태양의 광채를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태양이 엄연히 존재하며 매일같이 뜨고 진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지 못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쳐다보고서 조종사가 보이지 않으니 조종사 없이 비행기 스스로 날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단순히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실로 애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나는 대통령을 압니다”라고 말할 때에 그는 “나는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을 압니다”라는 뜻에서 그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미 그의 말 속에는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정사실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변에 조개가 살고 있는가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조개 한 개만 발견하면 된다. 그러나 해변에 조개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변 전체를 뒤져 봐야 하고, 조개는 바위 밑 1미터까지 파고 들어가므로 해저를 다 탐사해 봐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한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 우주를 다 탐사해 봐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따라서 무신론은 영원히 증명이 불가능한 거짓말이다.
●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서 3:4)
창조주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우주 만물의 법칙을 주관하며, 초자연적인 능력과 기적을 행한다. ‘프레드 호일’(Fred Hoyle)경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현대의 시나리오는 마치 토네이도가 보잉항공사의 한 고물 창고를 휩쓸고 지나갈 때 우연히 747 비행기가 탄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한다. 보잉 747기는 약 4백만 개의 부품들로 구성된 정교한 질서와 구조를 가진 기계다.
▲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쳐다보고서 조종사가 보이지 않으니 조종사 없이 비행기 스스로 날고 있다고 말하다면, 이는 실로 애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londonairtrave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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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47 비행기가 땅속에 묻혀 있던 철가루, 알루미늄 가루, 플라스틱 가루 등이 한곳에 모이기를 수억 년 동안 수천억 번 반복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특별한 방법으로 모인 결과라고 설명하면 사람들은 전혀 수긍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계 밖에 있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이 기계 구조에 대한 설계도를 머릿속에 그린 다음, 이 설계도에 따라서 제작했다고 답변하면 수긍하지 않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한번 주사위를 던져 6이 나오면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5번을 던져도 계속 6이 나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의심하게 될 것이며 만약 1000번을 던져도 계속 6이 나오면 우리는 그 주사위는 처음부터 오직 6으로만 설계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도 마찬가지이다.
▲ 시계가 지성을 갖춘 시계 제조공이 만들었다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답변일 것이다. gq.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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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패리’(william paley 1743-1805)는 그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서 신의 존재를 이렇게 논증한다. 째깍거리며 작동하고 있는 시계가 어쩌다가 땅바닥에 놓여 있다. 이 시계가 바람, 비, 태양열, 화산작용 같은 자연작용들이 우연히 합쳐져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성을 갖춘 시계 제조공이 만들었다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답변일 것이다.
이와 같이 정밀하게 돌아가고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있는 우주도 누군가에 의해 태동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애굽기 3:14)
이 세상 안에서 발견되는 크고 작은 모든 결과들을 보고 이러한 결과들은 있게 한 동인(動因)을 추적해 가노라면, 자기 자신은 결코 남에 의해서 작동되지 않으면서 다른 존재 내지 사건의 원인이 되는 제1원인이 있음을 추론할 수 있는데 이 ‘제1원인’이 바로 우리가 부르는 하느님의 존재이다.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blogs.blueletterbibl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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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그의 신학대전(神學大全)에서 다음과 같이 신의 존재를 논증한다. 첫 번째는 ‘운동과 변화’로부터 의 논증이다. 이 세상에 움직이는 사물을 볼 때 그 물체가 스스로 자의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여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을 운동시키는 제일의 원인으로써의 운동자(prime mover)인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가 있어야 한다. 그 ‘부동의 동자’가 바로 신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들은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알라,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각 나라에 분포하는 무수한 토템신앙의 신들, 이름도 모르는 잡귀신들이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이러한 신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구적 대상’이다. 무수한 ‘신’들 중, 인류의 역사상 검증 가능한 증거가 가장 체계적면서도 방대한 양으로 축적되어 있는 ’신’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창조주 신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체이시다
기독교의 근간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체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의 신성을 실제로 인간세계에 직접 드러내었다. 성육신(成肉身)이란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사건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빌립보서2:6-8)
전 세계 주요한 종교들을 살펴보면 부처, 마호메드, 공자 등은 자신을 단지 선생이나 예언자라고 말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는 그렇게 주장하셨다. 이 점이야말로 예수를 다른 위인들과 구별 짓게 하는 결정적 분기점을 이룬다.
하나님의 최고 계시는 자연도 아니요, 철학자도 아니요, 신‧인(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일체이신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의 형상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해답을 얻는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체이시다. eternitynews.com.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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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17)
만일 성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신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한다면, 기독교 교회는 본질이 서로 다른 두 분의 신을 믿는 이신론의 종교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다음과 같은 단정적 언급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자신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30) 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지만, “신성과 능력과 본질로서 동등하며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듯 나도 하나님이다”라는 뜻이다.
계속하여 다음의 말을 주목해보도록 하자.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미리 아브라함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유대인들이 가로되 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한복음 8:57-58)
다음의 구절 역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역할을 동등하게 수행하고 계시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한복음 12:44-45)
하나님이 예수님과 동격이 아니라면 기독교 핵심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시대에서 언급된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수긍하며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 기독교 근간이자 중핵인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통찰력을 깊이 심화시킬 필요성을 절감한다.
기독교에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삼위(三位)로 존재하지만, 본질(essence)은 한 분 하느님이라는 교리이다. 좀 더 깊이 그 본질을 통찰해본다.
‘삼위’이라는 말은 세 분을 지칭하지만 ‘일체’라는 말은 하나의 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드러내는 것인데 바로 하나님은 세 분, 즉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이 있지만 세 분 모두 같은 신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en.wikipedi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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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이 세분은 구별되는 세 인격이지만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이 같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쉽게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 모두 100% 신성을 가지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삼위는 신적 본체와 나란히 있는 어떤 존재들이 아니고 그 본체 안에 있으며 신적 본체의 한 존재 양식이다. 아버지는 참 하나님이시요, 아들도 참 하나님이시요, 성령도 참 하나님이시다. 각 위는 신적 본체와 동일하고, 다른 둘을 합한다 할지라도 더 크지 않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구별되어 존재하고 계신다. 삼위란 세 인격체라는 뜻이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르시고, 구별되신다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것은 스스로 독립되어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성부는 성령이 아니시며,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며,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다.
그래서 성부께서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성자는 성부에게 순종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은 성부하나님도, 성령하나님도 아닌 성자 하나님이시다. 또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 보내심을 받으셨다. 이와 같이 삼위 하나님은 서로 다르시며, 구별되는 세 분으로 존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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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