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아 우르’ 이라크 동남쪽 비옥한 지역
고대문명의 중심지이며 ‘우상숭배 집결지’
터키땅 ‘하란’ 이삭과 야곱과도 깊은 인연
징기스칸 원정 폐허화 달신 신전터 흔적만
최종 종착역 '가나안' 이스라엘 민족 초석
만방의 백성 구원하려 예수 그리스도 초림
▲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3대 종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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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인류 세계사 중심축 ‘아브라함’
고대 인류 세계사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3대 종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의 생존 유적지 발견은 많은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929년 3월 17일자 미국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은 크리스천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르와 아브라함의 유적지 발견’ 그리고 다음의 소제목들이 이어졌다. ‘아브라함은 유목민이 아니라 도시의 창시자’
이러한 엄청난 발견의 당사자인 울리(L.Woolley)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고고학으로 진로를 변경하여 대학 박물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후원으로 1922년부터 12년동안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를 발굴하면서 고고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날렸다.
유대 민족의 원류 아브라함을 떠올릴 때면, 우리는 무엇보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면서 자기 고향이자 모든 삶의 터전과 뿌리가 있는 곳을 미련 없이 떠난 엑서더스를 기억한다.
‘갈대아 우르’는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 비옥한 지역으로 고대 문명의 중심지이며 우상숭배의 집결지였다. 그런데 이곳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Terah)가 생존하여 있을 때, 야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긴다.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세기 15:7)
아브라함은 하란(Haran)에 도착해서 그곳에 한동안 살았다.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떠나야 하는 조짐이 없자 야훼께서 재차 나타나셨다. 야훼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되었을 때 두 번째로 그를 부르셨다. 이번에는 ‘아비 집을 떠나라’고 지엄한 명령을 내리셨다. 아브라함은 부친이 데라 145세에 인연을 끊고 하란을 떠난다. 그리고 60년 후에 데라는 205세로 하란에서 죽었다.(창세기 11:3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1-2)
결국, 아브라함은 아비 집과 완전히 결별하라는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여 하란을 떠난 후에야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입성하게 된다.(창세기 12:4-5) 아브라함은 혈육과 이별하는 모든 아픔을 떨치고 오직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했던 의인이었다.
▲ 아브라함이 ‘한 국가와 민족’을 일으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길을 떠나는 출발점이 바로 갈대아 우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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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깊은 성읍도시 ‘갈대아 우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라크 남부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
‘갈대아 우르’는 바사(페르시아) 나라 서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사이에 소재한 지역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즉 오늘의 이라크와 이란의 남서부 지역에 위치한다. 메소포타미아는 헬라어로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이다. 갈대아 지역의 동쪽과 북쪽의 산지는 오늘의 유전지대이다.
우르는 이미 BC 2600∼2400년경 바빌로니아(수메르)의 강력한 도시국가로 위용을 뽐냈다. 또한 우르 제3왕조 시대인 BC 2500∼1950년 곧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읍으로 토지는 매우 비옥하고 주민의 생활들의 부유하였으며, 농업과 어업의 중심지였다.
바빌로니아 전역은 함무라비의 바빌로니아 제1왕조에 의해 통일되었는데, 이때 우르는 수메르인 반란 중심지로 철저히 쇠락하였으나 신바빌로니아 때 재건되었다. 다시 페르시아(Persia) 때에 쇠퇴의 길을 걷다 BC 4세기경에는 완전히 폐허로 전락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브라함의 고향이 갈대아 우르가 아닌 두 번째 거주지인 하란으로 ‘샨르우르파’와 인접하여 있다고 주장한다. 이곳에는 이슬람교의 성지인 ‘아브라함 탄생동굴’이 있고, ‘아브라함 연못’도 있다.
▲ 하란서 가나안 헤브론까지 600km.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1,500 km 대장정 끝에 가나안에 입성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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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고향 하란에서 부친과 머물다.
갈대아 우르도 중요하지만 하란이라는 지역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근래에 와서 하란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리아 남동부 아부케말에서 북북서쪽으로 11킬로미터쯤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마리(텔하리리)라는 고대 왕도는 1933년부터 발굴 작업이 행해진 곳이다. 약 6헥타르를 차지하면서 300개의 방이 있는 거대한 궁전이 발견되었는데, 궁전 문서 보관소에서 2만여 점의 점토판 문서가 나왔다.
특히 흥미 있는 것은 ‘벨렉, 스룩, 나홀, 데라, 하란’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메소포타미아 북부 도시들로 열거되어 있는 이 지명은 모두 아브라함의 친족들의 이름을 반영하는 이름들이라는 점이다.(창세기 11:17-32)
▲ 데라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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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원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부친과 함께 둥지를 튼 곳이 바로 하란이다. 하란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믿음의 조상들과 관련된 유적이 다수 있기 때문에 3개 종교의 순례객들이 연중 인산인해이다.
하란의 본래 이름은 Aramnaharaim(아람나히라임)이다. 그 의미는 ‘두 강 사이에 있는 아람사람들의 땅’이란 뜻으로 이를 직역하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아람인들의 땅’이란 뜻이다.
먼저, 아브라함의 부친에 대해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셈의 자손 중에 ‘데라’라는 사람이 있었다. 데라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브람, 나홀, 하란’이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동행했던 조카 롯은 하란의 아들이다.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하란은 롯을 낳았으며”(창세기 11:26-27)
'하란'은 인명으로도, 지명으로도 사용되는데, '하란(인명)'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고, 데라 가족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란(지명)'에서 거하였으므로, 데라의 아들 하란은 하란 땅과는 큰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노아의 10대손 데라는 아버지 나훌과 아들 하란이 죽자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안락한 생활의 유혹으로 중간 기착지인 하란에 머물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갈데아 우르를 출발하여 목적지는 티그리스강의 상류였던 하란까지의 여행 거리는 900km에 달한다. 부산에서 신의주 거리이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평원 지대를 지나 지금의 터키 땅 ‘하란’에 머물게 되었다.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잡았다. 데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창세기 11:31~32)
● ‘하란’ 고대 상업의 중심지이자 교통요지
▲ 하란은 메소포타미아의 지배권을 두고 히타이트 제국과 아시리아 제국, 헬라와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 국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끊임없이 패권을 다투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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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은 어떤 곳이었을까? 하란은 우리말로 '길목'이란 뜻이다. 교통의 요지란 의미다. 지금은 터키 동남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산르우파르’에서 남쪽으로 약 4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하란은 옛날에는 고대 상업의 중심지이고 과거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은 상업과 대상들의 중심지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쪽으로 나가는 중간도시였으며 통상로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장사꾼들도 너의 상인들이라 이들이 아름다운 물품 곧 청색 옷과 수 놓은 물품과 빛난 옷을 백향목 상자에 담고 노끈으로 묶어 가지고 너와 거래하여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에스겔 27:23-24)
‘하란’은 이른바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북방 가장자리에 위치해 고대부터 이곳 정착민은 시리아 사막의 유목민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으며, 이곳 메소포타미아의 지배권을 두고 히타이트 제국과 아시리아 제국, 헬라와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끊임없이 패권을 다투던 곳이다.
▲ 아브라함 출생지 갈대아 우르와 제2의 고향 하란서 많은 우상들이 발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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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에서 하란은 강대국 앗시리아의 제2의 도시로서 위용을 자랑했는데, 대제국의 거대 도시답게 달신을 섬기는 커다란 신전이 있었다. 앗시리아의 기록에 의하면 달신의 신전 지붕은 레바논 목재로 만들어졌고, 벽은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한다. 또한 달신의 신상은 흘러내리는 수염이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머리에는 초승달이 새겨진 뿔모양의 왕관이 있었다.
주전 1,100년경 앗수르인들은 이 부근에서 유목하며 이 도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한 석비에는 BC 730년 앗시리아의 ‘티클랏 빌레셋 3세’와 그의 제후인 하란 왕이 달신에게 예배드리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하란은 앗시리아의 쇠락기인 BC 609년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자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여 최후의 격전을 벌였던 장소였다.
하란은 반란에 의해 왕이 된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BC 556~539)의 고향으로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데, 나보니두스는 하란 출신답게 바벨론의 주신(主神)인 마르둑(Marduk) 대신 하란의 신인 달신을 섬김으로 인해 많은 마르둑 추종자들의 원성을 사서 페르시아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 멸망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로마시대에 들어와 하란에서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2개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첫 번째는 주전 53년 크라스수(Crassus)가 이끄는 로마의 군대가 파르티아 왕국의 군대에 대패하여 약 44,000명의 병사를 잃게 된다. 원래 크라스수는 폼페이(Pompey)와 카이사르(Caesar)와 함께 로마의 제 1차 삼두정치의 세 원로 중 한 사람이다.
두 번째는 AD 217년 4월 6일 로마의 황제 카라칼라(Caracalla)가 달의 신에게 제사 지내고 이 도시로 들어오다 피살된 사건이다.
그러나 징기스칸의 손자 훌레구가 1259년 시리아 원정길에 이곳에 진출했다가 시민들이 저항했다 하여 성을 함락하여 전 시민들을 학살하고 모든 건물은 기둥뿌리까지 뽑아버려 오늘날 달신 신전터의 폐허만이 남아 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하란의 역사를 보여주는 성채와 집터만이 오랜 시간을 견디며 남아 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관광 수입과 농업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 하란은 아브라함 독자 이삭과도 깊은 인연
다시 바이블의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하란지역 부근은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면서 이삭을 낳았고 그가 장성하면서 아브라함은 그를 위해 신붓감을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그의 종 엘리에셀을 ‘나홀의 성’ 혹은 ‘밧단아람’(Paddan-Aram)이라 불리는 하란으로 보내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게 했다.(창세기 24장)
▲ 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을 하란으로 보내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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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셀은 브두엘의 딸인 ‘리브가’를 만나서 그녀를 이삭의 아내로 데려오게 된다. 브두엘이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의 아들이니, 조카의 딸을 이삭의 아내로 맞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결혼한 리브가는 바로 나홀의 손녀가 된다.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창세기 22:23)
▲ 하란은 야곱이 형의 복수를 피해 도망쳐 온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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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곳 하란은 야곱이 형의 복수를 피해 도망쳐 온 곳이기도 이다. 두려움에 떨던 야곱에게 20년 동안 안식과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창세기 28:2)
이곳에서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인 야곱은 레아와 라헬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다.(창세기 29-30장 24절까지) 이 지명은 창세기에만 나온다.
이삭의 당부대로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인 하란에서 아내를 구하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인 라반의 딸들을 만나면서 결혼을 하게 된다. 야곱은 외삼촌의 딸들 즉 이종사촌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아람 사람 라반은 이렇게 야곱의 장인어른이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은, 히브리 사람의 조상이 된 아람 사람이었다.
▲ 야곱은 외삼촌의 딸들 즉 이종사촌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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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람’은 누구일까? 노아의 아들 3아들 중 ‘셈’에게 엘람과 앗수르, 아르박삿, 룻 그리고 아람 이렇게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아르박삿의 후손이니까 아람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셈족 계열로 형제지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란, 즉 아람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친정과 같은 곳이었다. 하란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샘터였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많은 수의 시리아 난민들이 포연을 피해 ‘아람의 땅’과 ‘나홀의 성’이었던 샨르우르파 부근으로 몰려들었다. 시리아의 국경 도시인 ‘코바니’가 바로 샨르우르파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리아는 성경 속에서 ‘아람’ 혹은 ‘수리아’로 불리던 나라이다. 셈의 막내아들인 ‘아람’의 후손들이다.
현재 하란은 터키 지역에 속해 있고 시리아와 최근접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적으로는 야곱과 라헬이 처음 만난 우물터, 달 신전터 등이 남아 있다.
● 드디어 종착역 가나안땅에 입성하다.
최종 종착역지로서 주목할 만한 지명 ‘가나안 땅’이 언급된다. 가나안은 노아에게 저주받았던 함의 아들이다.(창세기 9:20-27).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그 가나안 자손들이 살고 있는 땅, 곧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인도하신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그는 아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창세기 12:4-5)
▲ 가나안 땅은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 이스라엘 민족이 향해야 했던 바로 그 땅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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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은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 이스라엘 민족이 향해야 했던 바로 그 땅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대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는 그 땅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바로 그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하란에서 가나안 헤브론까지는 600km.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1,500 km의 대장정 끝에 가나안에 입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