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유대민족 엑서더스· 다니엘의 70이레’
다니엘 선지자 ‘예레미야’의 70년 예언 깨닫아
BC 606년 포로 ‘고레스 칙령’ BC 536년 귀환
‘이사야’ 태어나지도 않은 이방 왕, 고레스예언
중건은 여러번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시기
‘니산월’ 바벨론 포로 이후 히브리 월력의 첫달
유월절은 니산월에 ‘출애굽 기념하는’ 최대명절
다니엘 9장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21.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22.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죄악이 용서되며,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다니엘서 9장)
▲ 남유다 70년의 포로 기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예루살렘 침입으로 인해 제1차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BC 606년부터 스룹바벨의 인도로 제1차로 귀환한 BC 536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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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포로생활’ 구약성경 다니엘 9장
구약성경의 다니엘 9장은 세계사의 관점에서 폭넓게 볼 때 역사서라 칭하기 보다는 미래 진행형의 대분수령을 이루는 핵심 축이라 할만하다. 단지 유대인을 향한 일획일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현미경적 예언뿐만 아니라 이들 민족을 둘러싼 고대제국의 흥망성쇠, 그리고 현시점의 지구촌 인류에게도 섬뜩한 적색 경고음을 연신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다니엘 9장의 예언을 함축하면 다음과 같다. 예언서의 핵심은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축, 이어 메시아의 탄생과 죽음, 성전파괴와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세계정부의 수립에 이어, 최종적으로는 메시아(그리스도)의 제국의 종결점으로 일대 파노라마를 형성한다.
다니엘서 9장의 서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1-2절) 다니엘은 다리오(Darius) 왕 원년인 BC 538년에 70년 포로의 기간이 마무리되고 있음을 인지하였다.
▲ 유대 포로귀환과 연이은 예루살렘성 중건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었다.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에스라 6장 1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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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다니엘이 기도할 때에 천사가 와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다. 이 역사적 대사건인 다니엘의 70이레의 꿈은 BC 538년 메대족속 아하수에로(Ahasuerus)의 아들 다리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첫해에 본 환상이다.(21-27절)
여기에서 한 이레는 7년이다. 구약성경의 중요 사건들에는 1일은 1년으로 계산한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단적인 실례를 찾아본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40일 정탐하고 나서 돌아와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을 내리시는데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0일을 40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내리셨다.(민수기 14:34)
다니엘이 먼저 깨달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종식될 것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살펴본다.
다니엘은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아 25:11-12, 29:10)는 말씀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예레미아의 말씀은 ‘에스라’에서도 동시 확증된다.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에스라 1:12)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본토로 귀환하게 된 대사역은 언제 극적으로 성취되었을까? 2년 뒤 장인이요 외숙부인 ‘다리오’가 죽고 ‘고레스(Cyrus)’가 BC 537년 집권하게 된다. 이 역사적 사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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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파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에스라 1:1-3)
예레미야의 예언 가운데서 백미는 바벨론 멸망(예레미야 25장, 29장)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레스는 누구인가? BC 539년 고레스는 바벨론 왕 벨사살이 연회를 베풀던 밤에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다니엘 5:30) 바사 제국을 창건했다.
“고레스는 해방자로 자처하며, 바벨론에 남겨 두었던 신상들을 원래 있던 성읍에 되돌려 보냈고, 포로 된 사람들을 귀향시키는 선정을 베풀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은 본토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다.”(역대하 36:22-23)
▲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본토로 귀환하게 된 대사역은 언제 극적으로 성취되었을까? 2년 뒤 장인이요 외숙부인 ‘다리오’가 죽고 ‘고레스(Cyrus)’가 BC 537년 집권하게 된다. 유물은 고레스 칙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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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최종 멸망
이미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Nebuchadnezzar)의 꿈을 통하여 바벨론 이후에 일어날 약 1천년 제국에 대해서 예언한 바 있다. 생생한 실례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헬라, 로마시대를 거쳐 열국시대까지 정확하게 이미 역사에서 실현되었다.
▲ 이미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Nebuchadnezzar)의 꿈을 통하여 바벨론 이후에 일어날 약 1천년 제국에 대해서 예언한 바 있다. 생생한 실례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헬라, 로마시대를 거쳐 열국시대까지 정확하게 이미 역사에서 실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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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게 된 역사적 사건을 살펴본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된다. 북이스라엘은 B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남유다도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최종 멸망하게 된다. 남유다는 바벨론의 단번의 침공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총 세 차례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첫 번째 침공은 BC 606년이다.
이에 남유다 70년의 포로 기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예루살렘 침입으로 인해 제1차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BC 606년부터 스룹바벨의 인도로 제1차로 귀환한 BC 536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최종 3차까지 귀환한다.
이에 이스라엘은 BC 536년에 1차 포로귀환을 하게 된다. 남유다가 포로로 잡혀간 때는 BC 606년이니 70년 만에 귀환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벨론의 1차 침입이 시작된 BC 606부터 고레스의 칙령으로 인한 1차 귀환 시점인 536년으로 계산한다.
▽ BC 536년 제1차 포로 귀환,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스룹바벨 등이 일차로 귀환(에스라 1-6장) ▽ BC 458년, 에스라의 제2차 귀환(에스라 7-10장) ▽ BC 445년, 제3차 귀환, 느헤미야의 주도(느헤미아 1-2장)
▲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연대가 BC 606년이라고 할 때, 다니엘이 예언서를 읽을 때는 70년이 거의 끝날 시기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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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연대가 BC 606년이라고 할 때, 다니엘이 예언서를 읽을 때는 70년이 거의 끝날 시기였을 것이다.아마도 포로생활 69년이 지나간 때인 듯하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민족의 귀환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기까지 불과 1년이 남은 시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기도한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서로부터 약 200년 전을 소급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태어나지도 않은 이방 왕, 고레스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셨다.
분명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다니엘서 1장 21절)는 말씀처럼, 다니엘은 이사야서 44장을 고레스왕에게 보여주었을 것이고 자기 이름이 분명 예언된 내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 틀림없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이사야 44:28)
고레스 왕이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하도록 허락한 중대한 사건이요, 유대 민족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 유대인 포로 3차례에 걸쳐 귀환
유대인들이 본토로 귀환하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은 ‘70이레의 시간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성전중건의 예언의 시점을 다시 세밀히 규명하여 본다.
성전 중건에 대한 예언은 ‘에스라 느헤미아 예레미아 다니엘’서를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대두된다.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영이 난 것이 언제인지는 크게 2가지이다. 그리고 유대 포로귀환과 연이은 예루살렘성 중건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었다.
▲ 이스라엘은 BC 536년에 1차 포로귀환을 하게 된다. 남유다가 포로로 잡혀간 때는 BC 606년이니 70년 만에 귀환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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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에스라 6장 14절)
이제부터는 유대인의 70년 포로 생활 종식에 이어, 예언의 중핵인 70이레에 대해 본격 규명해 보기로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레스 칙령이 일대 분기점이 된 것이 너무 확실하다. 또 하나는 ‘아닥사스다왕’(Artaxerxes)때이다. 이 시점은 후에 상술하겠지만 다니엘 70이레의 대예언 중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십자가 처형과 가장 일치한다.
▲ 성전 중건에 대한 예언은 ‘에스라 느헤미아 예레미아 다니엘’서를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대두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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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닥사스다는 두 번째, 세 번째 유다인 귀환을 허락했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잠시 중단시키기도 했었다.(에스라 4:7-24) 두 번째 귀환은 아닥사스다왕 칠년에 일어났다. “아닥사스다왕 칠년에…예루살렘으로 올아올 때에”(에스라 7:7)
세 번째는 아닥사스다왕 20년 재위 때이다. 유대인의 세 번째 귀환 느헤미아의 기록이 집중조명 받는다. 유대인의 포로 귀환공동체를 인솔하여 난관에 봉착한 에스라의 개혁을 돕기위해 왕의 재가를 얻어 예루살렘을 찾아와 고락을 같이했다.
포로 잡혀갈 때 세 번에 나누어서 잡혀 갔는데 돌아올 때도 세 번에 나누어서 돌아오게 된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동시대에 활동했고 바벨론에서 출생했다. 느헤미야는 총독이었고 세 번째 포로귀환의 인솔자였다.
▲ 느헤미야는 선지자 에스라와 동시대에 활동했고 바벨론에서 출생했다. 느헤미야는 총독이었고 세 번째 포로귀환의 인솔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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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세 번째 귀환인 BC 445년 아닥사스다왕 20년의 조서를 살펴본다. 아닥사스다왕은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은 느헤미야이다. 예루살렘 성문이 불에 탄 채로 남아 있고 성읍이 여전히 황폐되어 있다는 소식으로 근심에 빠져있는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중건하도록 허락하는 조서를 내린다.(느헤미아 2:1-9)
▲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주변 국가의 위협을 받고 한쪽 손에는 공사에 필요한 쟁기를, 또 한쪽 손에는 이방 민족의 침략을 저지할 무기를 들고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느헤미아 4: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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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이 공사는 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원동원 등의 문제뿐 아니라 이웃 민족의 방해 공작 때문에 아주 어렵게 공사를 진행하였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주변 국가의 위협을 받고 한쪽 손에는 공사에 필요한 쟁기를, 또 한쪽 손에는 이방 민족의 침략을 저지할 무기를 들고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이 때의 형편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느헤미아 4:16-18)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이 공사는 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원동원 등의 문제뿐 아니라 이웃 민족의 방해 공작 때문에 아주 어렵게 공사를 진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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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산 월이 매우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서 유월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월절의 절기와 다니엘서의 예언은 볼트와 너트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니산 월’(the month of Nisan)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가 이후, 사용된 히브리 월력의 첫 번째 달이다. 니산 월 14일은 유월절로 지켜졌다. 유월절은 유대의 최대 명절이다. 출애굽기가 기원이다.
야훼는 이집트가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해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린다.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에서 태어난 모든 첫 아이(가축도 포함된다)들의 죽음이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에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두면 밤에 야훼가 보낸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유월절의 시작이다. 이 첫 유월절은 무교병(발효시키지 않은 빵)의 축제라고도 부르는데, 출애굽기 12장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 모세는 히브리인들에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두면 밤에 야훼가 보낸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유월절의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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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인들은 서둘러 이집트를 떠나야 했으므로 신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발효된 빵이 아니라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만들라고 명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충실히 지켰다. 유월절 축제 기간은 7~8일 정도다. 이때 무교병을 먹는 게 전통이다. (제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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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우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