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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9 [05:02]
“수확의 기쁨을 누군가 함께 나눌 수 있어”
<초대 수필> 한상림 ‘9월은 인생의 환승역’
 
작가 한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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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고진감래 끝에 얻은 희망의 첫 수확

 

가을바람이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작가 한상림

올해는 여느 해 보다 40도를 웃도는 대지의 열기로 한반도 전체가 너무도 뜨거웠다. ‘달도 차면은 기우느니라던 옛 선조들의 표현이 어쩌면 그리도 적절한 말인지, 말복이 지나고 입추와 처서로 들어서면 식을 거 같지 않았던 열기도 점점 식어가고 조석으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면서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어느 새 9월이다. 사근사근하던 여편네가 싸아한 표정으로 투정부리듯 저녁이 되면 갑자기 기온이 서늘해지고 마음도 스산해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9월 한낮 햇살은 따갑지만 누구나 첫 수확의 기대와 설렘으로 다소 마음도 들뜨게 될 것이다.

 

1년 농사의 첫 수확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꿈을 갖고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 새 육십이 되고 또 칠십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우리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20여년 후의 내 모습도 그려본다.

 

한때 나도 부모에겐 첫 수확이었다. 아마도 내가 첫 아이를 낳고 기뻐하던 그 이상의 기쁨이었고 희망이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 나는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에게 첫 수확의 기쁨을 제대로 전달해 드리고 있을까?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아서서 내 인생의 뒤안길을 되돌려본다. 2003, 그 때의 9월은 이미 내 인생에 있어서 이상기류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었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한 예감으로 다가오는 가을을 막지 못하고 그저 여느 때와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이거니 하고 방임을 한 것이다.

 

2짜리 첫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로 고 2짜리 첫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세상살이 무섭고 두려운 게 하나도 없어졌다. 내 인생의 첫 수확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삶 속에서 글을 써가면서 나머지 인생의 아름다운 수확을 위해 달려간다.

 

첫 아이를 보내고 나서 약 십 오년간을 미친 듯이 앞만 보면서 달려왔다. 매일 봉사로 거의 일상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에 열심히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면서 꿈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보다 앞서 가는 몸이 영 따라주지 않는다. 지난 연말에 갑자기 두 다리 모두 무혈성고관절괴사라는 진단을 받고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한지 혼자서 많이 울고불고 하면서 좌절감에서 고통스러웠다.

 

당장 인생이 모두 무너져 내릴 거 같이 아프고 통증이 심하여 마약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매일 밖으로 다녔다.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를 보고 모두들 한 마디씩 걱정인지 염려인지 혹은 비웃음일지도 모를 위로를 받아가면서 구()에서 해마다 하는 연중행사인 김장김치 2천포기를 담아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온갖 행사를 훌륭히 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에서 가만히 쉬면서 병원에 다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한두 가지 아닌데 이 모든 걸 포기하고 건강만을 생각하려 하니, 그동안 열심히 봉사에 거의 전념하여 온 지난 시간들이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더욱 없었다. 차라리 고꾸라져 못 일어나 응급실로 실려 가는 한이 있더라도 20년째 봉사해 온 새마을부녀회에서 현재 강동구 새마을부녀회장 임기를 잘 마쳐야 한다는 각오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재임 3년을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연말연시 무척 바쁜 일정이 어느 마무리 돼가고 조금 쉬어가면서 일을 하다 보니 통증도 차차 완화되었고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하지 않고 진통제로 버텨가면서 좀 더 지켜본 후에 수술을 하라고 하였다.

 

그런 후 어느 새 1년이 돼가고 있으니 그동안 포기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아직도 다리는 많이 불편하고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걸음이 불편하다보니 남들에게도 불편함을 준다. 내 다리가 아파서야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또 다시 두 번째 시련이 와 있다. 이 시련을 잘 극복해야만 제 2의 인생을 잘 펼쳐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뜨겁게 살아온 인생

 

9월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때이고,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보다는 좌절감으로 시름시름 마음의 병이 깊어갈 수도 있는 때이다. 한때 시름시름 앓던 9월을 이제는 새롭게 탄생하는 9월로 엮어가려고 정말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9월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때이고,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보다는 좌절감으로 시름시름 마음의 병이 깊어갈 수도 있는 때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눈이 더 침침해서 책을 볼 수 없기 전에, 지팡이 짚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때,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 때, 언제든 비싼 밥 아니더라도 맛있는 칼국수 한 그릇 사주면서 정답게 웃을 수 있을 때, 그때가 지금이다.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 모든 것들을 내가 기꺼이 나서서 할 수 있다는 것과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에 정말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파도 걸을 수 있고 비록 넉넉지 못해도 밥 한 끼 사 줄 수 있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나에겐 커다란 축복이다.

 

우리 인생을 1년으로 나누어 본다면, 9월은 환승역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뜨겁게 살아온 인생,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일하여 거둬들일 첫 수확의 기쁨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즉 나도 행복해지고 남에게도 베풀 수 있는 환승역에서 티켓 한 장 받아들고 나머지 10, 11, 12월을 향해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달이 아닌가?

 

9월에게, 편지를 써 본다. 9월아, 지난 여름 뜨겁게 달아올라 지치고 버거운 마음 모두 내려놓고 이제 ‘9이라는 환승티켓 한 장 들고 달려가련다. 서두르지도 말고 여유롭게 이웃과 함께 손잡고 달려갈 수 있는 종착역 그 어딘 가에다 환호성을 힘껏 부려놓을 수 있도록 하자.

 

사랑하며 살기도 부족한 시간, 이제 섭섭함도 미안함도 다 용서하면서 코스모스 활짝 핀 길가를 향해 손 흔들며 천천히 걸어가 보자.

 

프로필

 

한예총 전문위원

시인, 국제 펜클럽회원

시집 따뜻한 쉼표’ ‘종이 물고기

hsr59@daum.net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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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17 [20:31]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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