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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9 [05:02]
“살기 좋은 이상세계…살아있는 혁명가”
<송기옥 칼럼> ‘허균의 율도국’
 
송기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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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옥 칼럼니스트

허균(許筠1569-1618)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호민론(豪民論)에서 조선 시대의 문제점으로는 왕은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허균은 세상을 바꾸려는 백성을 뜻하는 호민(豪民)의 대표적 상징으로 홍길동의 이상세계를 율도국이라 했는데, 중국 수호전(水滸傳)에서 관군의 토벌에도 살아남은 양산박의 잔당무리가 배를 타고 오끼나와 유구국으로 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허균 역시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이상세계 율도국을 상상하며 조선의 율도국은 어디로 삼을까? 고심 중에 아득히 먼 유구국이 아니라 예로부터 진표율사가 선계산(仙界山)이라 부르는 변산에 올라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위도(蝟島)를 이상국가(理想國家)로 선정한 개연성이 크다고 보겠다.

 

홍길동(洪吉童)이 혁명을 꿈꾸며 동지들을 불러 모으고 거사를 도모하던 곳 홍길동전(洪吉童傳)의 한문 필사본을 보면 *위도왕전(韋島王傳)에 위도라는 이름이 부안의 위도(蝟島)와 위도왕전 위도(韋島)가 같은 지명이라 보겠다.

 

허균이 부안 변산 땅을 밟게 된 것은 풍요로운 땅 김제의 이귀(李貴15571633)군수와 만나 동진강을 건너 부안의 명기 이매창(李梅窓1573-1610)과 자주만나 시문을 나누며 좌변산 우반동 골짜기 선계골 정사암에서 홍길동전을 집필했다는 설이 있다.

 

애틋한 글벗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에 허균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파격적인 시를 남길 정도로 친밀했다.

 

홍길동의 활동무대로 충청도와 조선조 때 조정에 반기를 든 도적무리가 할거했다는 피승지지 변산반도를 무대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홍길동전의 주 내용은 조선세종 때 좌의정 홍상직(洪尙直)의 서얼자로 태어난 홍길동(洪吉童)은 무예와 예절을 익혔으나 자신의 뜻을 다 펴지 못함을 한탄했는데 홍 대감의 또 다른 첩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모면하고서 집을 떠나 도적의 소굴로 가 우두머리가 된다.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자칭하고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와 타락한 불교 집단을 징치한 의적이 된다. 조정은 홍길동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는데 아버지 홍 대감을 회유하여 길동을 병조판서를 제수 받으라 하니 임금 앞에 나타난 길동은 병조판서를 사양하고 무리를 이끌고 어지러운 세상을 떠난다며, 길동은 어머니와 수하들을 이끌고 율도국(위도)으로 가 나라를 세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1594(선조 27)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597년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여 공주 목사 수임 중 반대파에게 탄핵받아 파면, 유배를 당한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유인으로 천민과 기녀와 어울리기도 했고 절간을 드나들며 타락한 불교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614(광해군 6) 827일 위성원종공신 2(衛聖原從功臣二等)에 책록 되었다. 벼슬은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대북에 가담하여 실세로 활동하였으나 1617(광해군 10) 인목대비 폐모에 적극 가담하였다.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을 없애려고 서자들과 규합하여 혁명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이를 비판하던 기자헌을 제거하려다가 반역을 도모하려했다는 기준격의 밀고로 능지처참으로 한 시대의 영웅은 무참히도 생을 마감한다.

 

그의 문집은 조선 왕조에서 모두 인멸(湮滅)될 번 하였으나 그가 죽음을 예상했는지 어린 외손자 이필진에게 전해주어 후대에 홍길동전(洪吉童傳)과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등을 남겼다.

 

홍길동전 역시 유몽인(柳夢寅)에 의해 허균 작품이라는 기록을 남겨 알려지게 되었다. 당색(黨色)으로는 동인이었으며 북인, 대북으로 활동하였다. 허균은 초당 허엽의 아들로, 허성의 이복제(異腹弟)이자 허봉, 허난설헌의 친제(親弟)이다.

 

손곡 이달(李達)과 서애 류성룡의 문하에서 배운 동인의 초대 당수 성암 김효원(金孝元)의 사위이다. 허균은 1569(선조 3) 음력 113일에 강릉 초당동에서 군수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초당(草堂)과 둘째 부인인 강릉 김 씨 예조참판 김광철(金光轍)의 딸 사이에서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허성(許筬)은 그의 이복형이고 우성전의 처가 그의 이복 누나이며, 후에 율곡 이이를 탄핵했다가 송응개 등과 함께 계미삼찬으로 몰려 축출된 허봉과 난설헌(蘭雪軒)허초희가 각각 동복형과 누나이다.

 

허균은 동인에서 분리된 북인의 일원이고 북인의 강경파인 대북의 일인으로 활동했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소문나 10세 이전의 소년기 때 시문을 잘 지어 문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조선중기의 외교가며 문인인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허균은 총명하고 재기가 뛰어났다.’고 칭찬했다.

 

허균은 죽어서도 홍길동이 되어 동에 뻔쩍 서에 번쩍 그의 정신세계는 인간평등을 부르짖고 부정부패를 내몰아 살기 좋은 이상세계 율도국을 꿈꾼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혁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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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17 [23:38]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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