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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7 [00:01]
당시 서독은 새로운 세계! ‘어느 간호사의 정착일기’(2)
 
소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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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6.25 전쟁의 상흔에 따른 경제발전의 회복의 속도가 매우 더딘 편이었다. 한국의 전반적 경제는 세계 최빈의 농업국으로 가난에 심히 허덕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끈끈한 가족연대의식, 근면함, 더욱이 우수한 자질 등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이미 잉태하고 있었다.

 

여기에 기폭제가 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인력이었다. 때마침 미국의 서유럽 부흥 재건의 마샬플랜이 역동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시점에서 당시 서독의 인력부족에 동방의 나라 한국이 구원투수로 전격 등장한 것이었다.

 

서독은 양질의 우수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충원했으며, 한국은 초라한 농업후진국가에서 일약 근대 산업화를 일군 초석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 라인강의 기적과 한국의 한강의 기적은 동일 연장선상에 있다 할 수 있다.

 

재능이 많고 무척 총명했던 그러나 극한 가난을 떨칠 수 없었던 시골 어린 소녀! 간호사의 신분으로 저 멀리 아득한 서독땅을 밟아 부단한 헌신과 치열한 노력 끝에 당당히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린 임정희 여사의 애국애족 휴먼 스토리를 인터뷰로 미니 연재한다.

 

임정희 여사는 현재 이전 독일의 수도였던 본에 거주하고 있다. 독자 제현들의 전폭적 관심과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편집자주)

 

 

▲  임정희 여사는 현재 이전 독일의 수도였던 본에 거주하고 있다  

 

 

부모님은 언니와 내가 보낸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

동생들은 한국사회 기여하는 전문인들로 자리매김

 

파독간호사 50주년 행사흘러간 세월의 자취 절감

1,000여명 간호사들 한자리에 가슴벅차고 뭉클해

 

 

 

▲ 교회간호사직을 결정하게 된 동기를 부여한 1972년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기독간호사협회 콘퍼런스.



후일, 독특하게 독일에만 있는 교회간호사직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1972년에 스위스에서 열렸던 국제기독교간호사협회 모임에서 저는 환자들을 돌보는 전인간호의식에 대한 산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저를 한걸음 진보하게 해 주었고 간호사로서의 보다 넓은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독특하게 독일에만 있는 교회간호사직을 선택하게 된 동기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준비된 그릇이 쓰여지게 마련이었습니다.

 

양질의 우수인력 파견은 당시 낙후 한국의 경제발전 초석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 또한 가족유대감이 무척 단단했던 한국가정경제에도 큰 보탬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먼저, 한국과 우리 가족에게 미친 지대한 경제적 영향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은 유럽 국가들 중 한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 국가가 되었습니다. 파독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당시 백영훈 산업개발연구원장에 의하면 한국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을 어느 나라에서도 얻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독에서 3천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약속 받았지만, 더 큰 문제는 누군가 지급보증을 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광부 5천명과 간호사 2천명을 인력 담보로 파견하기로 하면서 상업차관을 최종적으로 얻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국가 경제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세기를 되돌아보며 내게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헤아리게 됩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개인적으로도 저는 한국에 있는 우리 가족을 도울 수 있었던 특권에 대해 마음이 흐뭇하고 감사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언니와 내가 보낸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동생들의 학업을 뒷바라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도움이 밑거름이 되어 동생들은 모두 아주 훌륭하게 자라 주었고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성실하고 성공적인 직장인과 전문인들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오빠 네를 돕고 새 집도 마련하셨습니다. 동생들의 결혼에 필요한 비용 또한 언니가 거의 모두 담당한 셈입니다. 그 당시 저는 독일에서 결혼하여 살림을 하고 있었기에 온 가족의 가정 경제는 언니가 도맡았습니다. 전 지금도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언니에게 감사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하였으나 우리 언니는 오빠가 있지만 딸로서는 큰 딸이기 때문인지 우리 온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책임감이 독보적이었습니다. 파독간호사로 번 돈을 모두 온 가족을 돕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이 사실에 대한 산 증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덧붙여 재독 한국인으로서 독일 사회에 미친 영향 및 선진적이었던 서독의 문물을 받아드려 한국의 전반적 수준을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선진 독일의 문물이 한국의 전반적인 의식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개인적으로 꼬집어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독일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편지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가족들과 소통해 왔고,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족들과 친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 때마다 만남의 즐거움과 새로운 아이디어와 좋은 인생경험을 나누고 간다고 피드백 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독일 사회와의 교류를 통하여 상호간에 새로운 종류의 문화와 삶이 이식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음으로 재독 한국인으로서 독일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씀하여 달라.

 

독일에 와서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인들과 함께 일하고 공부하면서 한국과는 다른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재독 한국인으로서 이곳 독일 사회에서 처음 접한 다양한 삶과 문화에 적응 및 개척해 나가면서 저 자신이 고유의 문화유산임을 깨닫게 됩니다.

 

▲ 무지개 앙상블과 만돌린 협주 팀인 아드리비툼(adlibitum)  아드리비툼은 무지개앙상블의 성탄정기연주회 공연을 위해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며 독일 노래를 할 때는 몇몇 분이 함께 노래도 한다.    


문화의 유산인 우리들. 우리는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맥락에서 자기만의 현실을 창조해 낸 셈입니다.

 

독일인과 결혼하여 얼굴이 독일인인 딸의 어머니요, 얼굴이 독일인인 손자, 손녀의 한국 할머니로서 사랑의 동기에 기인하여 지금까지도 철저히 최선을 다합니다. 독일 사회에서 분명 한국 사람의 좋은 이미지와 한국 문화의 좋은 영향을 끼쳐왔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으로 남을 도울 때 내게 돌아오는 것이 오히려 훨씬 많음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근면, 성실, 사랑, 친절, 정직, 헌신, 봉사, 진실, 등의 가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2016년 파독 간호사 파견 50 주년 기념행사 당시 축가를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감격과 보람 등 분위기를 스케치 하여 달라.

 

 반세기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잔치인 파독 간호사 50주년 행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에센의 Zollverein(촐페어라인, 광산뮤지엄)에서 2016521일 오후 4시에 열렸다.


반세기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잔치인 파독 간호사 50주년 행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에센의 Zollverein(촐페어라인, 광산뮤지엄)에서 2016521일 오후 4시에 열렸습니다. 촐페어라인은 원래 광산이었으나 폐광된 이후 광산 박물관으로 변신한 곳입니다.

 

50주년 행사는 한국 간호사들의 파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한편, 독일 이민의 역사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리를 빛내준 약 1,000여명의 한국간호사들은 독일에 파견되어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하거나 또는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지로 이민하여 살다가 이번에 이곳에 함께하게 된 한 사람도 상당수였습니다.

 

행사는 파독 간호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동영상으로 시작되었으며 스쳐가는 젊은 시절의 간호사들의 앳된 모습을 보며 흘러간 세월의 자취를 절감하였습니다. 축사 및 만찬 그리고 문화행사, 비행기 행운권 추첨 등으로 진행된 이 기념식에는 독일 전역에서 참여한 연합합창단이 아리랑, 들장미, 소양강 처녀, 아빠의 청춘을 노래하였습니다.

 

▲ 재독 한인연합합창단에 참여한 본 무지개 앙상블멤버들의 모습: 홍은숙, 안순경, 임정희, 신영주, 김명자, 유현희 


우리 본 무지개 앙상블도 함께 연합하여 노래를 불렀고 무대에서 수많은 우리 간호사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 온 음악인들이 축제의 분위기에 흥을 돋우어 주었습니다.

 

독일로 처음 한국 간호사들을 인도한 이종수 박사는 영상으로 축사를 보내 주셨고, 파독 간호사 역사에 큰 역할을 담당하신 이수길 박사가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셔서 감회가 깊었습니다. 1,000여 명의 간호사들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며 이를 위해 준비한 한국 음식의 양도 방대하였습니다.

 

연합합창단으로 나서서 노래한 우리는 앞좌석에서 특별대우를 받았으나 어떤 이들은 자리가 부족해 내내 서서 행사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2016년은 제가 독일에 온지 45년이 되는 해였고, 10월에 근무 시작한지 45년 만에 퇴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거의 반세기를 독일에서 근무하며 보냈다는 사실이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간호사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삶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고 나는 아직 젊다는 생각을 해 보며 이 모든 일들을 살아서 경험할 수 있음에 감격하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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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14 [00:46]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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