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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5.26 [16:42]
‘봄 바라예다…뭉클뭉클 솟아나는 그리움’
 
림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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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bay.com                






 '봄, 그리움' 

 

 

   

 林  森

 

머얼리서 오는

봄 바라예다 이내

지붕위 잔설 글썽글썽

낙수되어 지는데, 하마

 

머얼리로 떠난

임 기둘리다 진즉

사무친 속내 주룩주룩

낙루되어 떨구네, 하냥

 

봄 오시면 오시려나

봄 오시듯 오실까나

뭉클뭉클 솟아나는

, 그리움

 

 

 

 詩作 note 

보통, 가을 추억은 유난스레 감성을 건드려 아련한 그리움에 몸살나게 만드는 요물이고, 봄 추억은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설레임에 들뜨게 만드는 귀물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 속설에 이미 세뇌된 뭇 사람들은 가을 추억만 그리움의 화신이라 여기면서, 이미 가을 기운 스미기 전부터 그리워할 준비하느라고 조급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안 그렇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나름 소중한 추억의 편린을 수집하느라고 여간 바쁜 게 아니다. 그리고는 그 추억들을 모아 모아서 깊은 마음창고에 숨겨놓고,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그리움에 맹렬히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

 

늘상 느끼는 심상이라서 이젠 그냥 그럭저럭 견딜 만도 하리라 여기다가도 막상 봄이 오면, 이렇듯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솟구치는 그리움에 몸살을 앓으며, 일상의 어디 한 군데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엉절거린다. 참으로 야속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런 사단은 올 봄에도 어김없이 증명되고 있음이다. 안타깝게도, 한심스럽게도, 온 나라가, 전 세계가, 보도 듣도 못하던 악마의 마수에 걸려 허덕이는 이 때이거늘 봄이 무에 대수라고 이리 심하게 계절을 타는지, 나날이 더해지는 역마살의 유혹에 제자리 걸음 하며 팽이 돌 듯 좌불안석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다가 특별한 일 아니면 가급적 외출과 여행을 삼가고, 스스로 집 안에 머물기를 생활화하라는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형편에는, 생각할 줄 아는 성인이라면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그래도 배울만큼 배운 터수인지라 그저 마음으로만 한껏 그리워하며, 가슴에서 치미는 그리움일랑은 속으로 하냥 곱씹으면서, 그렇게 하 시절 인내하리라는 다짐으로 곱손 옹송거려보는, 남 보기에는 면구스럽고 꼴 사나운 아침 단상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사는 모습이 불시에 비 오듯 슬픈 날이 있고, 바람 불듯 불안한 날도 있으며, 파도 치듯 어려운 날도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견디지 못할 일도 없고, 참지 못할 일도 없다. 다른 집은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생각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집집이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가정마다 아픈 눈물 없는 가정은 없다. 그렇지만 웃으며 사는 것은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동행을 한다는 의미다. 어차피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고,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과 어울리고 뒤섞여 함께 살아간다. 한 여행자가 네팔의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있었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 눈보라까지 심하게 몰아쳐 눈을 뜨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멀리서 여행자 한 사람이 다가왔고, 둘은 자연스럽게 동행이 됐다.

 

동행이 생겨 든든하긴 했지만 말 한 마디 하는 에너지라도 아끼려고 묵묵히 걸어가는데, 눈길에 웬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대로 두면 눈에 묻히고 추위에 얼어 죽을 게 분명했다. 남자가 동행자에게 제안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갑시다. 이봐요, 조금만 도와줘요.” 하지만 동행자는 이런 악천후엔 내 몸 추스르기도 힘겹다며 화를 내고는 혼자서 가버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혼자 노인을 업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더운 기운에 노인의 얼었던 몸까지 녹아 차츰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난로 삼아 춥지 않게 길을 갈 수 있었다. 얼마쯤 가자,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 살았다. 다 왔습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두 사람이 도착한 마을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그는 인파를 헤치고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이 에워싼 눈길 모퉁이엔 한 남자가 꽁꽁 언 채 쓰러져 있었다. 시신을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랐다. 마을을 코 앞에 두고 눈 밭에 쓰러져 죽어간 남자는 바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가던 그 동행자였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우리는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혼자보다 둘이 좋고, 둘보다 셋이 좋은데,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힘들 때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면서 세상을 살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에게 제갈량이 있었다면 칭기즈칸에겐 야율초재가 있었다.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만 보고 인물을 썼던 칭기즈칸이 한낱 피정복민의 젊은 지식인에 불과했던 야율초재를 그토록 신임했던 이유는, 천문, 지리, 수학, 불교, 도교 할 것 없이 당대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한 그의 탁월한 식견 때문이었다.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봤던 야율초재!

 

그가 남긴 아주 유명한 명언이 하나 있다. ‘與一利不若除一害(여일리불약제일해) 生一事不若滅一事(생일사불약멸일사)’ ,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오래 전 역사 속의 인물이 남긴 말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뜻은 일맥상통한다. 진리는 시대의 변화에도 늘 변함없이 일정하다. 깊은 깨달음은 간결하고, 큰 가르침은 시대를 관통하는 법이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났다가 애플이 망해갈 즈음 다시 복귀했다. 그가 애플에 복귀한 뒤 맨 처음 시도한 것은 새로운 제품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제품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수십 개에 달하던 애플 제품을 전문가용, 일반인용, 최고 사양, 적정 사양으로 분류해, 4가지 상품으로 압축했다. 그 결과 다 죽어가던 애플을 살려냈다. 불필요한 기능을 하나하나 제거한 결과, 다 망해가던 애플은 어느덧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이 되었고,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보약을 먹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에 앞서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기보다 욕심을 제거하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다. 삶이 허전한 것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비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진리는 아주 가까이에 있고, 정말 사소한 가운데 드러난다.

 

다시 말하지만,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미 그 전에 대단한 인연의 섭리가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만남이란 명제에 우연이란 만남의 결과는 결코 없다. 그 때문에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만남 못지 않게 소중한 것은 만남의 끝 매듭을 어떻게 짓느냐는 것이다. 처음 만날 때는 신선하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 지나치리만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평생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솔한 짓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처받고 소외되는, 사람 사이의 섬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실상 우리네 인생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왜 혼자만 동떨어져 고통 속에 괴로워하며 살려고 할까? 우리네 인생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왜 슬퍼하며 눈물지을까?

 

우리가 마음이 상하여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사랑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다. 나의 삶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의 촛점을 상대에게 맞추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마음 속에서 누리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놓고 거기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자.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병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고, 욕심이 생겨 힘들어진다.

 

누구에게도 나의 바램을 강요하지 말자. 누구에게서도 나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말자. 그러면 슬퍼지고 너무 아파진다. 우리네 인생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이제 즐겁게 살아가자.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누리면서 살아가자.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지어서 서로의 필요를 나누면서 살아가자. 그리하면 만족하고 기쁨이 온다.

 

그러니 갈등하지 말자. 고민하지 말자. 슬퍼하지도 말자. 아파하지도 말자. 우리가 그러기엔 너무 인생이 짧다. 뒤는 돌아보지 말고 앞에 있는 소망을 향해서 달려가자. 우리 인생은 우주 보다도 크고 아름답다. 우리 인생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우리 자신은 너무 소중한 존재다.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 살고 가는 우리네 인생, 아름답고 귀하게 여기며 서로 사랑하며 마음을 나누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필자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남에게 섭섭했던 일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데, 남에게 고마웠던 일은 슬그머니 잊혀지곤 한다. 반대로 내가 남에게 뭔가를 베풀었던 일은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남에게 상처를 줬던 일은 쉽사리 잊어버리곤 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은 일은 기억하고, 타인에 대한 원망은 잊어버린다면 삶이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고마운 일만 기억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겅중거리다 보니 어느새 3월도 저물었다. 이래저래 4월 한 달은 딱히 이런 저런 모임과 행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쫓기듯 해결해야 하는 업무로나 혹은 개인적인 일들로, 한 분기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면서 새 계획을 세우느라 누구에게나 바쁜 달일 것 같다. 사실은 산 세월이 많아질수록 살 세월은 적어지는 것이다. ‘플러스 마이너스의 법칙?’ 혹시 가슴 속에 묻어둔 감정의 응어리들, 또 찌꺼기들로 스스로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새 달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인데.

 

남아프리카의 바벰바부족사회에서는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혹여 그런 행위가 일어날 경우,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상당히 흥미로운 의식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계도한다.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른 부족원을 마을 한 가운데에 세운다. 그러면 모든 부족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부족원 주변으로 모여든다. 어린아이도 빠지지 않는다. 모여든 모든 부족원들은 그 부족원을 둥그렇게 에워싼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가운데 세워진 부족원이 그동안 베풀었던 착한 일을 하나씩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건설적인 속성과 능력, 선행, 친절한 행위 등 모든 것이 빠짐없이 열거된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거나 우스갯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의식은 며칠을 두고 이루어진다. 부족원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칭찬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불만이나 무책임하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부족원 전체가 잘못을 저지른 그 부족원의 칭찬거리를 다 찾아내면 식이 끝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진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은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 환영받으며 되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부족원 모두가 참여하는 긍정적 형태의 심판은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의 자존심을 최대로 살려 주면서 그로 하여금 부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색다른 심판 때문에 이 사회에선 범죄 행위가 없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칭찬은 가장 무서운 체벌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칭찬받는 이의 양심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양심은 옳지 않은 일을 거부하고, 또 나쁜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괴롭힌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만큼 칭찬하는 이의 기대치에 도달하고픈 마음을 갖게 하는 속성이 깃들어 있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다. 아무리 때가 묻어 있고 마음이 탁할지라도 마음 어느 한 켠, 아주 투명하게 맑은 곳이 숨겨져 있고, 칭찬은 그것을 찾아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한다. 혹시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방향이 다르다고 혹은, 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책하기 이전에 그의 장점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칭찬하자. 그것은 그의 마음을 자라게 하고 잠재 능력을 개발시키는 훌륭한 동기가 될 것이다.

 

어느 부부가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지런한 주인 남자는 손님이 오면 찾는 물건을 재빨리 담아 건넸다. 그런데 오는 손님마다 달걀이 너무 작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어떤 손님은 저기 길 건너 집 달걀이 훨씬 큰 것 같군요.”라고 하더니 그 집으로 달걀을 사러 갈 정도였다. 그는 경쟁자인 길 건너 가게로 달려가 달걀을 살펴보았다. 언뜻 보아서는 자기 가게 달걀과 크기 차이가 없었다.

 

경쟁자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달걀 몇 개를 사 와서 비교해 보니 생각했던 대로 크기가 같았다. 주인은 길 건너 가게에 달걀을 사러 오는 손님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는 부리나케 가게로 뛰어가 아내를 불렀다. 그는 아내에게 오늘부터 달걀을 팔아보라고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손님들의 불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히려 달걀이 커졌다며 좋아하는 손님도 있었다.

 

저기 길 건너 가게에서 파는 달걀은 너무 작아요. 사람들에게 달걀을 살 때는 이곳으로 가라고 얘기해야겠군요.” 다음 날부터 그의 달걀은 불티나게 팔렸다. 아내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그는 아내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길 건너 집에서는 부인이 달걀을 팔고 있더군. 그 부인의 손은 가느다랗고 작아서 달걀을 집으면 더 커 보였지. 반면에 내 손은 두껍고 컸기 때문에 내가 달걀을 집으면 작게 보였던 거야.”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친다. ()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한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 과 반()의 여백에 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들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따로 또 같이일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독립적이면서, 또한 독립적인 개체로서 서로를 인정하여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삶을 올바르게 이어나가라고 좋은 권면의 말을 곧잘 하고는 있지만, 정작 필자 자신의 삶에서 그 아름답고 향기 고운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서 민망하기는 하다. 봄의 햇살이 제법 따습게 내리 쬐는 새 달의 시작점에서, ‘이렇게 살게 해 주소서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제목의 기도를 옮겨본다.

 

-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작은 것을 얻든 큰 것을 얻든 만족은 같게 하시고, 일상의 소박한 것들에서 많은 감사를 발견하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이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

 

기쁨이 있는 곳에 찾아가 함께 기뻐하기 보다 슬픔이 있는 곳에 찾아가 같이 슬퍼하게 하소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시고, 내가 상처 입었을 때는 빨리 치유해 주소서. 이전에 나의 어리석음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었거나 상처 입힌 일이 있으면 나를 괴롭게 하여 빨리 사과하고 용서받도록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는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이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투명하게 하소서. 왜곡이나 거짓이나 흐림이 없게 하시고, 무엇이 내 마음을 통과할 때 그대로 지나가게 하소서. 그 때 무엇인가 덧붙는다면, 그것은 사랑이나 이해나 감사나 희망이게 하소서. 약속을 조심스럽게 하게 하소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기 보다 잠시 미루게 하시고,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기로 약속했다면 더 많이 주게 하소서.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는 교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음악을 듣게 하시고, 햇빛을 좋아하게 하시고, 꽃과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게 하소서. 고향 친구들 만나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누구의 말이나 귀 기울일 줄 알고, 지켜야 할 비밀은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훌륭함을 알게 하고, 그 훌륭함의 핵심에 접근하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나 학력이나 출신으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람의 참 가치와 의미와 모습을 빨리 알게 하소서. 사람과의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그 사람의 좋은 점만 기억하게 하소서. 시간을 아끼게 하소서. 하루 해가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내 앞에 나타날 내일을 설렘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하여질 때도 삶을 허무나 후회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과 안정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이후에 오는 잔잔함을 새롭게 감사하고, 이전보다 더 깊은 평안을 누리도록 하소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햇살이 좋은 날은 며칠 쯤 그 계절을 완전히, 그리고 색다르게 느끼게 하소서. 가족에 대한 사랑, 가정의 기쁨을 늘 가슴에 품게 하시고, 이런 마음을 전할 기회를 자주 허락하소서.

 

건강을 주소서.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일하는 동안에는 열정이 식지 않게 하시고, 열정이 식어 갈 때는 다음 사람에게 일을 넘겨주고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가는 길목이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 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말이다. 오늘이 나를 외면하고 자꾸만 멀리 멀리 달아나려 해도 그 오늘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훗날의 소망과 꿈을 그리워하는 봄의 그리움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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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01 [00:3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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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20/04/01 [10:25] 수정 삭제  
  아름다운 시 잘 보고 갑니다.
홀로코스트 20/04/01 [19:34] 수정 삭제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가는 길목이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 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말이다.
배둘레햄 20/04/05 [08:11] 수정 삭제  
  오늘이 나를 외면하고 자꾸만 멀리 멀리 달아나려 해도 그 오늘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훗날의 소망과 꿈을 그리워하는 봄의 그리움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다.
노트북 20/04/05 [08:20] 수정 삭제  
  우리들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따로 또 같이’일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독립적이면서, 또한 독립적인 개체로서 서로를 인정하여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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