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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8.06 [06:05]
<송기옥 칼럼> ‘모악산 미륵신앙’
 
송기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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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옥 칼럼니스트

모악산(母岳山, 795m)도립공원은 전주와 김제시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전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여러 번 오른 적이 있다. 남서쪽 산 너머에는 금만경 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유서 깊은 미륵신앙(彌勒信仰)의 본산인 금산사를 품고 있다.

 

후백제 견훤왕의 장자 신검왕자의 난으로 부왕 견훤이 갇힌 금산사는 왕기(王氣)가 서린 무속신앙의 본산이기도 하다. 석가모니가 입멸하여 567천만 년이 지난 후 사바세계에 태어나 화림원 안의 용화수 아래 성불하여 미륵불이 되고, 세 차례의 설법 용화삼회(龍華三會)를 통해 석가모니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을 남김없이 교화 한다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현겁(賢劫) 동안에 나타난다는 ()의 부처 가운데 석가불은 네 번째이고 다섯 번째가 미륵불이라 한다. 충남 계룡산 신도안과 모악산 금산사 주변에 각종 토속신앙이 서식한 이유는 기울어져간 조선과 일제의 학정에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미륵하생신앙으로 마치 로마 학정에 유대인들이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던 구세주 메시아 관과 유사하다 하겠다.

 

미륵신앙은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죽은 어머니가 용화삼회에 임하기를 발원하며 비륵불상을 조성하였으며, 백제 때는 미륵삼존이 출현한 익산의 용화산 밑의 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하여 백제 미륵신앙의 중심사원으로 삼았다.

 

신라에서는 미륵신앙의 이상세계를 신라 사회에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화랑(國仙)을 곧 미륵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화랑도가 크게 떨쳤다.

 

모악산 주봉을 따라 내려온 구성산과 제비산을 배산으로 삼고, 1961년 막은 금평(金坪)저수지를 임수로 삼아 그곳에 보기드믄 크나큰 한식목조 건물인 태을(太乙)교 본전의 위용과 1902년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 강일순(1871-1909)과 후처 차경석의 이종 누이 고수부(高首婦1880-1935)의 유해를 안치한 집과 증산법종교본부의 삼청전이 들어서 있다.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은 1902년부터 1909년까지 7년 동안 포교활동을 했는데, 그의 포교지역은 자신이 광제국(廣濟局)이라는 한약방을 차렸던 모악산이 중심이었으며, 그 일대인 전주·태인·정읍·고부·부안·순창·함열 등 동학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동진강을 배경 삼았다.

 

강일순의 제자 차경석(1880~1936)은 인의(仁義)에 기초한 보천교(普天敎)를 창시, 1911년 그의 부친 차치구의 고향 정읍 입암면 대흥리를 본부로 삼아 수많은 신도들이 모여 도시 왕국을 이뤘다.

 

1920년대 백두산에서 목재를 운반해 십일전을 지을 만큼 교세를 떨쳤는데, 1936년 차경석이 죽은 후 일제에 의해 보천교 해체로 태을교·동화교·수산교·삼성교·무을교·인천교·원군교 등 새로운 교파가 분립되었다.

 

현재 정읍 입암면에 보천교중앙본소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십일전(十一殿)의 주초 돌만 뒹굴고 있다. 십일전은 경복궁,근정전보다 2배나 큰 건물로 일본인에게 50원에 경매 당했는데,150만원으로 지은 십일전은 서울 조계종에서 인수하여 대웅전으로 변조되었다.

 

독립운동사에서 차경석은 나용균을 통해 상해임시정부에 5만원(50억원)의 큰돈을 보냈는가 하면, 김좌진,김원봉 등에게도 독립자금으로 도왔다. 해방 후 이승만이나 김구 주석이 정읍을 방문하여 정읍 사람에게 큰 빚을 졌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말이다.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보천교단은 일제가 추산, 신도 6백만 명이란 강력한 민족 종교로써 독립운동 자금사건으로 일본의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차경석이 독립운동에 기여 한바는 있으나 경남함양 황석산(皇石山)에서 자칭 천자(天子)라며 황제 등극식을 하였고, 신도들의 전 재산을 시주케 하는 등 문제가 되어 천도교 등 조선 지식인들에게 크게 비난을 받았다. 차경석은 강일순의 증산교 교리를 바꾸려고 하여 내분이 일어났는데, 말년에 일제와도 타협하는 친일 성향에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현대에 들어 일부 증산계 종교인들이 보천교를 재평가하려는데, 시대착오적인 문제가 많아 역사학계에서도 그 반응은 미온적이다. 1974년에 대법사 증산교는 케이블 상생방송국을 개국하여 태상종도사 안세찬, 종도사 경전 안중건의 환단고기(桓檀古記) 북콘서트 등 다양하게 포교에 활용한 증산계통 종교들 중 가장 교리 정립이 잘된 단체로 평가받고 있다.

 

경관 좋은 금평 저수지 주변에는 굳게 닫힌 증산도 대저택 3층 망루에서 두 여인이 지키고 있고, 웅장한 태을교 역시 몸집이 육중한 저승사자 같은 수문지기가 큰 몽둥이를 들고서 무슨 비밀이 많은지 관광객들을 태을궁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

 

그 화려하고 번성했던 민족종교는 이상세계를 꿈꾸며 진토 같은 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땅에는 그러한 파라다이스는 찾을 길이 없다. 하늘은 잔뜩 흐려 먹구름이 모악산에 일더니만 기어코 잔잔한 금평호수가에 수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시원한 빗방울이 내린다.

 

나는 한동안 그 운치에 매료되어 떠날 줄 모르고 서성이었는데, 비오리 한 쌍이 푸드득 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젖은 옷깃을 여미며 발길을 옮겼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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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17 [01:4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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