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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21 [22:02]
비보풍수(裨補風水) 창시자 ‘도선국사’
<특별기고>고려대 평생교육원 최이락 교수
 
최이락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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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락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영암 월출산 천황봉 정기어린 큰 바위 얼굴

성기동 구림마을 역사적 큰획그은 3인출생지

왕인박사, 도선국사, 고려개국 대공신 최지몽

 

고려 태조 왕건의 출현예언한 인물로 유명

풍수에 따라 땅의 길흉(吉凶) ‘파악하고 보완

중국에는 없는 한국 최초의 비보풍수 창시자

 

 

천하 명산인 전남 영암의 월출산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쉬렉을 닮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큰바위 얼굴이 있다.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809m)에서 구정봉으로 가는 중간지점인 바람재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데, 오전 10~11시 사이에만 속세에 출현한다. 큰 바위 얼굴이 있는 구정봉은 왕인박사 탄생지인 성기동(聖基同)의 주산(主山)이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도갑사(道岬寺)가 깃들어 있으니 난세에 세상을 구원해 줄 초인이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편집자 주)

 

▲  이 바위는 예전에 장군바위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큰바위얼굴로 각인되어 있다.

 

‘3대인물탄생지 성기동(聖基同)’

 

영암읍에서 목포 방면의 819번 지방 도로로 진입하여 구림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300m 지점에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 왕인 박사 유적지 입구가 있고, 여기서 동쪽으로 약 500m 올라가면 성기동에 이른다. 큰 바위 얼굴이 굽어보는 동네를 성기동(聖基同)이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세분의 성인이 태어난 동네라는 뜻이다.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은 백제 근구수왕 때 태어난 왕인박사(王仁博士).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한 분이다. 공예와 일본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황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었다.

 

고급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사람들을 계몽한 일본문화사의 성인(聖人)으로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원조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스카 시대의 한자를 그대로 읽어 비조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스카 시대에는 왜국(倭国)에서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마을에서는 왕인박사가 태어난 성기동을 유적지로 조성하고 해마다 축제를 여는데 일본사람들도 많이 참가한다.

 

다음으로 태어난 사람은 통일신라 말기 덕흥왕 때 태어나 선불교를 중흥시킨 선승(禪僧)인 도선국사다. 도선국사는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비조(鼻祖) , 일명 효시로 불린다. 당시 신라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등 기득권이 향유하고 있던 교종(敎宗)이었다.

 

교종은 경전중심으로 공부하고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는 귀족불교였다. 그러다 보니 글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나 하층민들은 부처님 법문은 곁불도 쬐지 못하였다.

 

신라말에 이르러 참선(參禪) 사상이 퍼져 전국적으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생겨났다. 구산선문은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중국 당나라에 들어가 수행 정진하여 선승들이 귀국하여 장대한 뜻을 세우고 개산(開山)한 선종의 아홉 산문(山門)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을 말한다.

 

도선은 동리산문의 혜철스님으로부터 선()의 법맥을 이어받아 선불교(禪佛敎)를 널리 중창하였다. 아울러 피폐해진 신라 백성들에게 풍수지리를 널리 보급하여 구빈(救貧)의 역할을 담당하니 국사(國師)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고려 왕건의 책사였던 최지몽((崔知夢)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최지몽은 태조 왕건을 도와 새로운 왕조인 고려를 개국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최지몽은 또 하늘의 별을 보고곧 변란이 있을 것이니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조언해 왕족 왕규(王規)가 일으킨 2대 임금 혜종 시해 음모를 막아냈다혜종은 나주 출신 정화왕후 오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건의 장남이다.

 

구림마을에서 일본의 아스카(飛鳥時代문화를 연 왕인 박사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시조로 불리는 도선국사고려의 개국공신인 최지몽 등이 탄생했으니 이만하면 월출산 큰바위 얼굴의 영험함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 한국 고유 풍수지리학의 초석을 놓은 도선국사     


 

탄생설화 비둘기숲 구림(鳩林) 마을

 

세분의 성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도선국사(道詵國師). 구림(鳩林) 마을은 영암군 영암읍에서 남서쪽으로 약 10떨어진 곳에 있다구림 마을의 동편에는 월출산이 있고, 그 산자락 아래에 도갑사(道岬寺)가 자리 잡고 있다. 도갑사에서 구림 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왕인(王仁) 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聖基洞) 국민 관광지가 있다.

 

또한 구림 마을의 입지는 영암군에 있는 월출산의 주지봉에서 흘러내린 두 줄기의 낮은 구릉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데, 예로부터 두 마리의 용이 품은 마을이라 하여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하였다.

 

도선국사의 탄생 설화는 위인의 그것과 빼 닮았다. 지금의 도갑사 자리에는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도선의 어머니 최씨가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오는 오이를 먹고 아이를 잉태하여 낳았으니 그가 바로 도선이다.

 

도선의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아 창피하다 하여 숲 속에 버렸는데 비둘기들이 아이를 날개로 감싸고 보호하므로, 최씨는 문수사 주지에게 아이를 맡겨 키워 줄 것을 부탁하였다. 훗날 장성한 아이가 선종과 풍수를 일으킨 도선국사다. 도선이 버려진 숲속 바위를 국사암(國師巖)이란 이름을 얻었고 그 숲은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이 되어 천년을 이어오고 있다. 비둘기 숲이니 일명 구림(鳩林)이다.

 

또한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진 것으로 전해진 전라남도 화순의 운주사(雲住寺) 와불(臥佛)은 이런 설화가 전해진다. 도선이 천불(千佛)천탑을 세우는 공력의 마지막에 와불만 세우면 되는데, 일에 지친 도선대사의 상좌가 그만 닭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하늘에서 내려온 석공들이 그대로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가버렸기 때문에 누워 있다. 이 와불이 바로 서게 될 때 개벽이 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한다.

 

▲ 구림(鳩林) 마을에 있는 도선국사의 탄생지! 국사암(國師巖)

 

난관 방어! 비보풍수(裨補風水)창시자

 

도선은 15살 때 월출산 화엄사에서 머리를 깎고 화엄경을 공부한지 일 년이 채 안되어 큰 뜻을 깨달았다. 20살이 되던 해, 도선은 그 곳에서 스승인 혜철로부터 말없는 말, 법없는 법의 의미가 내포된 無設之說  無法之法(무설지설 무법지법)의 선()의 이치를 배우고” (형이상학적 실존의 선은 현실세계의 어떠한 경험이나 사물과는 다른 것, 즉 구체적인형상을 지닌 것이 아니며, 형체도 색깔도 소리도 없고,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알 수 없으며, 인간이 가진 감각 지각의 작용을 초월한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이다.- 편집자 주) 대오확철(大悟廓徹, 철저하게 크게 깨달음) 하였다.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성립된 선종 구산(九山)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裡山門) 또는 동리산파(桐裡山派)의 선() 사상은 두 가지 특성을 지녔는데, 하나는 유식(唯識, 쉽게 말하면, 마음의 불교) 사상의 포용이고, 다른 하나는 풍수지리 상()의 수용이었다. 부연하면, 풍수지리 상지법(相地法)은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아 땅의 모양대로 기운이 서려있어서 이를 인간의 삶에 차용하여 추길피흉(追吉避凶) 하려는 풍수사상의 수용이다.

 

여기에서 도선은 동리산문 계통의 선종 승려이자,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창시자이다. (이는 간단하게 말하면 흉한 것을 길하게 고쳐서 복을 주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편집자 주) 도선은 광양 백계산(白鷄山)옥룡산파를 일으키고 선풍(禪風)을 드높였다. 옥룡산파는, 도선의 별호인 옥룡자(玉龍子)에서 유래하였다.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출현을 예언한 인물로 유명하다. 태조실록에는 도선이 왕건의 아버지 왕륭에게 찾아가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찌 기장을 심을 터에 삼을 심었는가?” 도선의 비범함을 알고 왕륭이 그 뒤를 쫓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러주는 대로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大數)에 부합해 내년에는 필히 지혜로운 아들을 얻을 것이다. 이름을 건()으로 지어라.” 도선은 봉투 겉장에 간단한 글귀를 써 왕륭에게 주고는 미래에 삼한을 통합할 주인 대원군자를 당신에게 드리노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집을 지으니 그달부터 아내가 아이를 품었다. 열 달 뒤에 낳으니 그가 바로 고려태조 왕건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풍수지리적인 예지의 관점은 묘략풍수와 다르다. 대부분의 묘략풍수의 단골 스토리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고승이 찾아가 조상묫자리를 점지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선과 왕륭의 만남에서는 음택(陰宅)이 아닌 양택(陽宅)으로 천기(天機)를 얻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고려 사서 편년강목에 따르면, 도선은 십 수 년 뒤 태조와 만난다. 도선은 태조가 17세 되던 해 송악산(松嶽山)을 찾아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혼란한 때 하늘이 정한 명당에 태어났으니, 삼국 말세의 창생들은 당신이 구제해 주길 기다린다.” 도선은 그때부터 왕건의 스승이 됐다. 군대를 지휘하는 일과 진법(陣法), 지리(地理)를 읽는 법 등 병법과 풍수를 가르쳤다.


도선의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 고려와 조선을 통하여 크게 영향을 준 학설이다. 도선은 대개 중국에서 기원하여 발달한 ‘참위설’(讖緯說, 자연계의 변이가 사회의 길흉을 예언한다는 사상)을 골자로 지리쇠왕설(地理衰旺設, 지기(地氣)의 약함과 강함은 항상 변하며, 지기가 왕성할 때에는 왕조나 사람이 흥하지만 쇠퇴할 때에는 멸망한다는 내용), 산천순역설(山川順逆設 비보설(裨補說)을 주창하였다.

 

, 지리(地理)는 곳에 따라 쇠왕(衰旺)이 있고 순역(順逆)이 있으므로, 왕처(旺處) 순처(順處)를 택하여 거주할 것과, 쇠처(衰處) 역처(逆處)를 인위적으로 비보(裨補)할 것을 말하여, 일종의 비기도참서(秘記圖讖書)를 남겼다. 뒷날 고려시대에 성행한 도선비기(道詵秘記)는 후대의 풍수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려 태조는 도선의 설()을 참작하여 자손을 경계하는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지어 후손에게 전하였다.

 

훗날 삼한을 통일한 태조는 훈요십조를 제정하면서, 도선의 가르침을 받들어 산천의 좋고 나쁨을 가려서 사원을 지어야 한다.”고 명했다. 도선의 풍수비법을 국가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태조가 도선의 예언을 얼마나 신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은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정한 것 외에 망령되이 함부로 사찰을 더 창건하면 지덕(地德)을 손상시켜 고려의 왕조가 장구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계림 황엽(鷄林 黃葉), 송악 청송(松岳 靑松)” 도선비기의 대표적인 예언이 신라의 몰락과 고려의 개국을 점친 계림(鷄林)은 황엽(黃葉)이요, 송악(松岳)은 청송(靑松)이라는 주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림은 신라의 도읍지 경주에 있는 김알지 탄생설화가 있는 곳을 말하고, 송악은 개성을 말하니 새로운 왕조와 수도를 예언한 것이다.

 

도선은 풍수에 따라 땅의 길흉(吉凶)을 파악하고 보완하는 비보설(裨補說)’을 주창했다. 지리(地理)는 곳에 따라 쇠왕(衰旺)과 순역(順逆)이 있으므로 골라서 머물고 떠나야 한다고 했다. 도선비기는 풍수도참(圖讖) 사상에도 영향을 끼쳐 묘청의 난과 정감록 등에 차용되었다. 도선 사후 500년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설 때 무학대사(無學大師)는 도선이 환생한 것처럼 역사에 등장하였다.

 

도선은 말년까지 명산을 떠돌아다니며 석굴과 움막에서 수행을 지속했다. 유명한 구례 사성암(四聖庵)도 한곳이다. 그는 898년 광양의 옥룡사에서 열반 직전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내가 이제 가야겠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이니 무엇 하러 더 여기 있을 것인가?”말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이때가 그의 나이 72세였다.
 

▲ 화순 운주사 와불(臥佛). 와불이 바로 서게 될 때  개벽이 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한다.   

 

풍수지리의 원류! ‘섬진강 사도리

 

지리산을 감싸고도는 섬진강 변에는 도선국사가 비보풍수를 깨친 곳이 있다구례군 마산면 사도리(沙圖里)가 그곳이다. 도선국사가 구례 사성암(四聖庵) 머물 때였다하루는  살이 넘은 기인이 찾아와 풍수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섬진강 모래로 사신사(四神砂)를 만들고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전주작(前朱雀), 후현무(後玄武)에 대한 길흉을 논하고 안산(案山)과 조산(朝山)(가깝고 작은 것은 안산이고 멀고 높은 것은 조산이다-편집자 주) 역할을 설하고 수구(水口, 청룡과 백호의 끝 부분이 서로 만나는 지점)와 명당수를 그려 이치를 깨닫게 하였다.

 

도선국사는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땅의 이치를 확연히 깨달았다. 이후 지역에서는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린 마을, 사도촌(沙圖村)이라 일컫고 풍수지리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도선 풍수의 학맥을 이어받는 수계자는 다음과 같은 계율을 지켜야 한다.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이 학문을 전하지 말라(非人非傳). 오직 금전의 이익을 위해 혹세무민(惑世誣民)해서는 안 된다.” 당시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암자는  분의 성인되시는 원효의상도선진각국사등 큰 스님이 수행했다고 전하는 구례 섬진강  오산에 자리한 사성암(四聖庵)이다. 암자가 절묘하게 공중에 매달려있다.

 

비보풍수(裨補風水)! 미시적 이해

 

비보풍수는 동양비술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성행한다. 풍수지리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는 비보(裨補)란 개념이 없다. 비보란, 어떤 지형이나 산세가 풍수적으로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는 술법이다. 비보는 사람의 힘으로 길국(吉局), 즉 좋은 형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비보압승(裨補壓勝), 보염승(補厭勝)이라고도 일컫는다.

 

용맥(龍脈), 장풍(藏風), 득수(得水), 형국(形局) 등 풍수의 주요 부분에 대해 적용시킨다. ‘형 국은 얼굴집터묏자리 따위의 겉모양과 부분의 생김새를 이르는 말이다. ‘용맥’(산들이 끊임없이 맥과 줄기를 만들어 연이어져 내려 온 자연의 지형지세를 일컫는 말)이 약하다면 흙이나 돌을 채워넣어 보토(補土)를 하여 형태를 외양상 튼튼하도록 바꾼다. 심지어 조산(造山)이라고 해서 산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보토를 한 것의 대표적인 것에는 보토현(補土峴)이 있다. 성북구 성북동 북쪽으로 뻗은 삼각산의 봉우리 중에는 마치 개가 쭈그리고 앉은 모양을 하고 있는 구준봉 뒤쪽에 있는 고개로서, 이곳이 서울 도읍터의 입수목이 되어 잘록하므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그 약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하여 해마다 흙을 보태고 떼를 입혔으므로 보토고개 또는 보토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산을 만든 것에는 경복궁 뒤쪽의 아미산(峨眉山)이 대표적이다.

 

바람이 좌우로 숭숭 잘 통하는 지형이라면 인위적으로 청룡과 백호를 쌓아 바람막이를 한다. 또 어디가 허술하다면 숲을 만들어 이를 보완하는 것도 많이 쓰이는 수법 중의 하나이다. 비보풍수는 어쨌든 일체의 풍수적 단점을 풍수원리를 원용해 인공적으로 고치는 자연의 성형수술이다.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다도선국사는 ‘땅은 () 흐르는 생명체 여겼다침과 뜸으로 몸을 보호하듯땅도 () 과한 곳은 약화시켜야 하고허한 곳은 ()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리에 따라 나라  곳곳에 사찰과 탑을 세웠다자생풍수의 근간을 이루는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이다. 도선국사가 비보를 행한 사찰은 전국 500여 곳에 이른다.

 

유명한 곳 몇 곳을 소개하면,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였던 광양 옥룡사(玉龍寺)가 있다. 옥룡사는 좌청용이 함몰하여 북동풍의 살풍(殺風)에 노출이 되었는데, 동백나무를 식재하여 동수비보(洞藪裨補)를 꾀하였다. 동수(洞藪) 비보는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숲을 조성해 막거나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방풍에 이용한다. 그리고 그 동백나무숲이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고려시대는 도선의 비보사탑설에 의하여 경향(京鄕) 각지에 비보소(裨補所)를 설치했고,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이란 관청까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고을에 동수’(洞藪)라는 숲이나 돌탑 등의 비보물을 조성하였다.

 

전라남도 순천시의 조계산에 위치한 사찰 선암사(仙巖寺)에도 비보의 흔적이 있다. 이곳의 각황전 철불과 강선루(降仙樓)도 유명한 비보현장이다. 또한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도 비보풍수의 모델하우스이다. 서울 북한산 우이동에 도선국사의 이름을 딴 도선사(道詵寺)가 있다. 도선국사의 피력(加被力, 불가사의한 힘으로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는 의미)으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사찰이다.

 

조선왕조에서도 조산(朝山)인 관악산의 화기(火氣)로 부터 경복궁을 보호하고자 호압사(虎壓寺)라는 절을 세웠으며, 현재 서울역 근처에 남지(南池)라는 인공 못을 조성하였고, 숭례문 현판글씨를 세로로 쓴 것이나 광화문 앞에는 물길을 관장하는 상서로운 짐승인 서수(瑞獸)인 해태를 설치하는 등 풍수적 보완을 하는 비보물이 조성되었다. 진주의 비봉산(飛鳳山)() 알자리도 비보풍수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전국 각지에 풍수지리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현대 4차산업혁명시대에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을 논하는 시대에도 풍수지리는 엄연히 살아있다. SK서린동 사옥에 주춧돌에 거북문양을 새긴 것 이라든지, LG그룹의 여의도 쌍둥이 빌딩을 건축할 때 여의도 행주형(行舟形)’ 터에 사옥을 건축하는 일, 특히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삼성의 경우 동양학자를 책사로 두고 자문을 구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현대의 우리가 도선국사의 비보풍수정신를 어떻게 이어받아야 하는가에 이른다. 대각국사 도선께서 비보풍수라는 법력으로 속세를 정화하고자 하는 원력은 온 세상을 명당터로 하여 자연과 사람이 상생조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프로필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K-풍수지리 아카데미원장

Human Life Design Center 소장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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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4 [12:28]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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