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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2.01 [02:16]
“썰지도 않고 팔았는데… 맛은 일품”
<土曜 隨筆> 수필가 한경희 ‘할머니표 김밥’
 
수필가 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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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양푼 가득김밥을 이고서

 

▲ 수필가 한경희

며칠 전부터 밤에 출출해질 즈음이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뚫어~ 뚫어~.’ 아파트 단지에 굴뚝이 있을 리 없고 대체 뭘 뚫으라는 건지. 의아했지만 귀찮아 내다보지는 않았다.

 

후텁지근했던 날씨가 퍽 가을 꼴을 한 날이다. 사내의 뚫어~’ 소리가 오늘따라 처량하고 쓸쓸하게 들린다. 나는 베란다를 열고 소리를 좇았다. 커다란 나무통을 둘러멘 중년 사내가 아파트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의문의 소리는 찹싸알~~떠억이었다. 어떤 말이든 반복하면 리듬이 붙게 마련이어서, ‘찹싸알이라는 앞부분은 목 안으로 사라지고 떠억소리가 그리 들렸던 것이다. 칼로리를 따져가며 먹는 시대에 다디단 떡이 야밤에 팔릴 리가 있겠는가. 사내가 안쓰러웠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야참꾼이 많았다. 망개떡과 찹쌀떡, 메밀묵, 겨울엔 군고구마와 생굴도 팔았다. 그중에 으뜸은 윤서 할머니네 김밥이었다. 할머니는 큰 양푼 가득 김밥을 이고서 골목골목을 누볐다.

 

김밥은 지금의 여느 전문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늘었다. 김 한 장을 반으로 잘라 거기에 다시 밥을 반만 얹고 단무지와 달걀로만 말았다. 때론 단무지와 당근이나, 달걀과 당근을 넣기도 했지만 매번 두 가지를 넘지는 않았다.

 

썰지도 않고 팔았는데 그다지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보기와 달리 맛은 일품이었다. 단맛 도는 김과, 되지도 무르지도 않은 탱글탱글한 밥알, 마침맞은 간, 참기름의 고소한 향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녀인 윤서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아빠는 세 살 때 저 세상으로 가고 엄마가 재가하면서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고 했다. 윤서 엄마는 우리 엄마와 중학교 동창이었다. 윤서와 나는 반이 달라 학교에서 마주칠 일도, 동네에서 같이 논적도 없었다.

 

산동네 아이들은 좀체 우리 아래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아이가 매일 밤 부러웠다. 맛있는 김밥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김밥은 동네를 한 바퀴 다 돌기도 전에 바닥이 났다. 뒷골목 홍등가의 술집 언니들은 밤손님을 기다리다 김밥 한 줄씩을 입에 물었다. 출출한 배를 달래며 고향집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 온갖 재료를 다 넣은 김밥이 왜 할머니의 초라한 김밥 한 줄보다 못한 건지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이 돌았다

 

어느 해 바람이 선득거릴 즈음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관절염이 심해졌나보다 생각했다. 한 번씩 쉬는 날은 있어도 연달아 보이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김밥 할머니가 돌지 않는 가을밤은 허전하기만 했다.

 

얼마 후 할머니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이 돌았다. 내게 백혈병은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눈을 맛있게 먹던 여주인공 제니의 병이었다. 병명이 주는 왠지 모를 낭만 때문에 젊고 예쁜 여자가 걸려야 할 것 같은 병. 나는 절대 할머니가 백혈병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다리가 몹시 아픈 것일 뿐이라고 믿었다.

 

겨울이 다 끝나가도록 김밥을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듬해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어른이 되어서도 김밥을 먹을 때면 종종 할머니가 떠올랐고 그 골목이 그리웠다. 윤서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일전에 동생들과 모여 그 김밥을 화제에 올렸다. 그렇게 맛있는 김밥은 먹어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온갖 재료를 다 넣은 김밥이 왜 할머니의 초라한 김밥 한 줄보다 못한 건지.

 

아마도 인생살이가 단맛보다 쓴맛이 많다는 걸 알기 전에 먹은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솜사탕 같던 시절, 그때 난 솜사탕은 다 먹고 나무 막대만 들고 그 골목을 빠져나왔는지도 모른다.

 

지금 거기에 가면 어린 윤서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난 단번에 그 아이를 알아볼 것이다. 머루처럼 검고 깊은, 슬픈 눈을 가졌을 테니까.

 

찹쌀떡 장수가 멀어져 간다. 아무도 사지 않았다. 내일은 많이 팔리길 바라본다. 어느 집 아이에게도 달고 맛있는 추억 하나가 더 생길 수 있게. 내일은 윤서 할머니표 단출한 김밥을 말아봐야겠다. 분명, 그때 그 맛이 아니란 걸 알지만 말이다.

 

한경희 프로필 / 201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2016년 에세이문학 등단, 8회 매원수필문학상, 수상수필집: ‘시간이 건네는 말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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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8 [18:1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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