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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길
林 森
달성길 다릿목
흔전만전 꽃눈 휘날리더라
하얀빛 찬란한 폭설
북녘에 꽃눈내리는 12월 어느날,
역시
꽃은 지는 게 아니었어
꽃은 흘러내리는 거야
펄펄, 외 길 차창 눈송이로 움붙어
꽃 흘러내리는 날,
나목 아래 서면 하냥 꽃눈내리는 환상,
고백커늘
12월의 눈이 어린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지
12월은 그렇게 눈을 빚지만
시인 빚기도 하였지
때론 눈물 만들기도 했지만
12월 그 눈물은
무른 나를 시인으로 키웠지
눈 흘러내리는 사이로 비,
겨울비 자주도 내리더니
겨울비따라 흘러가던 하얀 꽃눈들과,
꽃눈 저벅저벅 밟고가던 물발자국 소리와,
하염없도록 꽃눈은 날리고....
꽃눈 다 흘러내리고나면
함초론 연초록 새잎 돋아나리니
가지런 두손 모아 기다리기로 하자
연초록 착한 휘파람소리
담장넘어 예 까지
들려날 때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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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note
송구영신 시점이다. 묵은 것, 해묵은 것, 말라비틀어진 한 해의 모든 기억들을 꽁꽁 싸매어 다 묻어버리고 새로운 소망, 새로운 꿈, 새롭게 솟아나는 기쁨으로 새 해를 맞이하고 싶다. 올 한 해는 우리 생애에서 완벽하게 파묻어버리고 싶다. 벽두부터 시작되었던 코로나의 악령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다 잘나지도 못한 위정자들, 권력자들이 피 터지게 싸우는 목불인견의 싸움터에서는 썩은 시궁창 냄새가 풍겨나온다.
대관절 누가 승리자이고 누가 진 게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와중에 선량한 국민들은 몸과 마음을 심하게 다치고 있다. 그래도 변함없이 연말은 찾아왔고, 또 다시 새 해가 우리에게 선물인 양 다가서고 있다. 새 해라는 이름으로 밝아오는 태양을 맞이하기에 심히 부끄럽고 계면쩍지만, 올 해의 잘못된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리라는 다짐 얹어 진심으로 반성하는 자세로 맞이하는 새 해라면, 더불어 새 마음 새 뜻으로 손 모두어 화합하리라는 각오로 맞이하는 새 해라면, 아마도 그 햇살에 눈 부셔도 기꺼이 두 눈 부릅뜨고 맞이해도 무방하리라.
‘외통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수를 써도 파멸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수이며, 주로 장기나 오목 같은 게임에서 사용되는데, 궁지에 몰린 상황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체스에서는 ‘체크메이트’라고 한다. 다른 관점으로는 ‘이지선다’를 좋지 않은 쪽으로 당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해도 질 수 밖에 없는 상태를 뜻한다. 게임에서 무한콤보나, 절명기를 맞았을 때, 상성이 너무 극심하게 갈렸을 때, 너무 강력한 패턴에 말려들어 빠져나오기가 힘들 때 등등의 경우에서 표현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올 한 해 우리가 당한 형편이나 사정이 이 외통수에 걸린 듯 하다. 도무지 움츠리고 뛸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요 ‘사면초가’의 형상이 한 해 내내 지속되었다. 제대로 힘 한 번 못 써보고 쓰나미에 휩쓸린 격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무력감이나 자아상실의 중환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가해자가 없는 파해자만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그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질을 지닌 채 살아남기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도대체가 가장 기초적인 삶의 제목 자체가 버거운, 이른바 막장세상이 되어버린 거다.
그러니 자연스레 한숨과 푸념만 즐비하게 쌓여간다. ‘사랑의 달’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남을 향한 눈길에는 원망과 미움만 가득하다. 서로서로를 향한 넋두리와 하소연으로 목이 쉴 지경이다. 이 상태로만 가다가는 머지않아 멘탈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끝없이 쌓여가는 불평과 불만의 탑이 하늘까지 치솟는다. 늘어놓기 시작하니 도대체가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저 지면으로라도 속에 가득했던 짐 덩어리를 죄다 토해놓을 심보다.
그리고는 그렇게 여느날과 다름없이 암울한 심사로 맞이하던 오늘 아침 예기치 않게 필자는, 요즘 여간해서는 보기 드문 희망을 만나게 되었다, 들어주는 이도 없는 끝없는 울부짖음과 몸부림만 난무하는 이 계절이라 여겨지던 거울 속에서 숨어있는 하늘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너무도 갑갑하고 울적하여 겨울 바람이나 맞으려고 활짝 열어제낀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하늘이 거울에 반사되더니, 그 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필자의 가슴 속으로 쏴아아 밀려 들어왔다.
순식간에 오래 묵은 쳇증이 씻겨내리는 것 같이 시원하고 상큼한 충격이 머리로 솟구쳐 올랐다. 일전에 내렸다가 혹한 때문에 미처 녹지 못하고 담장 옆에 쌓여있던 하얀 눈이 겨울바람에 눈가루로 화하면서 푸른 하늘로 날려 올라가는 정경이 필자의 눈에 고스란히 보여졌다. 찰나지간의 일이라 사진으로도 찍지 못했지만 작은 눈회오리 바람은 또렷하게 필자의 뇌리에 각인이 되었다. ‘아! 눈은 내리기만 하는 건지 알았더니 올라가기도 하는 거구나.’
그런 거였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단순하게 일정한 규칙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진실의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는 거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자연스럽게 여겼던 모든 조화와 형상이 때로는 그 형태를 달리할 수도 있고, 그에 따라서 가치와 질서가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이, 어쩌면 보여지는 모든 진실에 우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동안 거울 속의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해가 가고, 다시 새 해가 온다는 사실. 겨울이 깊어지면 뒤를 이어 봄이 열려진다는 사실. 이런 일상적인 사실들이 실은 어떤 거대한 진리나 심오한 진실 보다도 더 엄숙하고 창대한 진리이며 진실이라는 걸 깨달으며,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속성을 뼈저리게 삼킨다. 그러면서 이제 밝아오는 새 해는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는 걸까를 궁리해본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 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 해는 참고, 상큼한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차와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고 새 해를 맞을 일이다.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하는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며 맞을 일이다. 아무리 매운 추위가 곳곳에 몰아치며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 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 속에 또 한 잔의 커피에 목을 축인다. 살다 보니 긴 터널도 지나야 하고, 안개 낀 산길도 홀로 걸어야 하고, 바다의 성난 파도도 만나지더라. 맞다. 살다 보니 알겠더라.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스치고 지나야 하는 것들은 꼭 지나야 한다는 것도.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고, 남아야 할 사람은 남겨지더라. 두 손 가득 쥐고 있어도 어느샌가 빈 손이 되어 있고, 빈 손으로 있으려 해도 그 무엇인지를 꼭 쥐고 있음을.
소낙비가 내려 잠시 처마 밑에 피하다 보면 멈출 줄 알았는데 그 소나기가 폭풍우가 되어 온 세상을 헤집고 지나고서야 멈추는 것임을. 바람도, 눈보라도,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다 지나가지만 몰아닥치는 그 순간에는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지나간다 모두 다.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 마저도 말이다. 흐르는 것만이 삶이 아니다. 저 강물도, 저 바람도, 저 구름도, 저 노을도, 당신도, 나도, 기다림의 때가 되면 이 또한 지나가기에 우리는 올 한 해의 고통을 기억 속에 묻어버리면서 새 해를 맞이하는 거다.
사람들은 무수한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그 인연 속에 고운 사랑도 엮어가지만 미움도 엮어지는 게 인생이다. 고운 사람이 있는 반면, 미운 사람도 있고, 반기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외면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정겨운 인연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악연도 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과연 나는 남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 주었을까? 타인에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진솔하고 정겨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분명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언제든 만나도 반가운 사람으로, 정다운 사람으로, 사랑스런 사람으로, 언제든 만나고 헤어져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새 해를 여는 시점에서 필자는 다짐해 본다. 새 해에는 좋은 인연을 더 많이 만들고, 그 좋은 인연들과 행복하게 사는 내 인생의 멋진 한 해를 만들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올 한 해 했던 실수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한층 세련되고 성숙한 인간관계로 빛나는 날들을 만들어가겠다고 말이다.
물도 한 곳에 모여있으면 탁해진다. 쇳덩이도 쓰지 않으면 녹이 슬고 만다.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좁은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 성장할 수 없다. 황량한 사막, 낯선 도시를 찾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새로운 경험과 감각, 꿈을 키워가야 한다. 그렇다. 틀에 갇혀있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나무도 묶어놓고 자라면 더 이상 자랄 수 없다. 우리는 틀을 깨야 한다. 상상의 세계와 발전의 세계는 무한하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새 해에는 모두가 성공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새 해에 우리는 모두 영광의 자리에서, 정상의 최고봉에서 마음껏 행복해야 한다. 그럴 권리를 누려야 한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아름다운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아름다운 자이다. 그리고는 조금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도 이내 깨닫게 된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행복한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행복한 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행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도 많다. 넘치는 풍요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 보다 못 가진 것에 대한 불평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진정 아름다운 자는 함께 나누며 사는 사람이며,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진정 행복한 자이다. 미국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어느 사장은 직원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하게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일러두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들여온 물건이 진열된 것을 보고 직원들에게 이 물건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직원들은 상품을 세밀하게 살펴보고는 “색상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이렇다 할 특색은 없습니다.” “바느질도 허술해 보입니다.” 등 상품에 대해 솔직한 평을 내놓았다. 그 때,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와 그 신상품을 관심 있게 살펴봤다. 그러자 눈치 빠른 직원 한 명이 손님에게 다가가 과장되게 상품을 칭찬하자 손님이 그 상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장은 물건을 팔려는 점원을 말리더니 그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님, 지금 선택하신 물건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좋은 상품이 들어왔을 때 꼭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원들은 물론 그 손님도 놀라 사장을 의아하게 쳐다보았지만 이내 사장의 정직한 성품에 감탄하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상점이자 미국 최초의 백화점인 ‘Dry Goods Store The Marble Palace’의 ‘알렉산더 터니 스튜어드’였다. 스튜어드는 돈보다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며 사업에 성공한 모범적인 사업가였다. 배우자를 고를 때도, 직원을 채용할 때도, 친구를 사귈 때도 그 사람이 진실함을 먼저 본다면 가장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사람들의 신용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도 못 나가며 열심히 일을 한 끝에 그 많던 빚을 거의 청산해 가던 ‘양희은’씨에게 엄마의 숨겨진 빚은 청천벽력이었다. 또 다시 시작된 돈 걱정과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그녀의 얼굴은 날로 어두워졌고, 부르는 노래도 슬픈 노래들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를 만나러 카페로 찾아온 친구가 우연히 외국인 신부님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한국어에 능통한 한 신부가 미스 양의 얼굴이 왜 저렇게 어둡냐고 묻자 친구는 그녀의 사정을 다 털어 놓았고, 신부님들은 그녀를 돕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이 소식을 그녀에게 전하자 그녀는 한 마디로 딱잘라 거절해 버렸다. 아무리 돈이 궁하다 해도 처음 보는 손님한테서 돈을 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번 달 이자를 주고 나면 다음 달 이자 걱정을 하기에 바쁜, 도무지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는 돈과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신부님과 약속을 잡아 놓았다고 등을 떠밀었고,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부님을 찾아갔다.
무안해하는 그녀에게 신부님은 돈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내 돈이 아닙니다. 여러 신부들이 모은 거에요. 우리는 이 돈을 무기한으로 미스 양에게 빌려주겠습니다. 아무 때라도 형편될 때 갚으세요.” 그녀는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고맙다는 말만 하고 돌아서는데 신부님이 다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 미스 양, 우리도 이자를 받아야겠어요.” 그녀는 이자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저희들이 받고 싶은 첫 번째 이자는 미스 양의 웃음이예요. 그리고 두 번째 이자는 이 다음에라도 지금 미스 양과 같은 처지의 젊은이를 만나게 되면 꼭 도와주길 바래요. 이 두 가지가 우리가 받으려는 이자입니다.” 그녀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단지 눈물만 핑 돌 뿐이었다. 양희은의 고백은 방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목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까? 힘겹고 버거웠던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각자의 희망찬 계획과 포부 속에 진심과 감사를 담아 소중하게 버무려서 새 해의 복주머니에 예쁘게 담아서 곱게 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