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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1.16 [22:42]
<연재소설> ‘작가 朴又木’ 혈맥(血脈)1회
 
작가 朴又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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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구다라의 별들

 

가야의 샛별

 

저 멀고먼 은하계의 억조에 달하는 별 무리로부터 큰 별 하나가 땅으로 내려앉으니 그로부터 천추의 세월로 혈맥이 뻗어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사택(砂宅) 가문과 오하라(大原)가문으로 꽃피웠다.

 

가야 여러 부족 국들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10대 구형왕(仇衡王)이 신라에 항복하기까지 끊임없이 신라와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다. 20여 년 사이에 무려 여덟 차례나 전쟁을 치를 정도였다.

 

가야는 신라가 낙동강 서쪽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했다. 신라가 낙동강 서쪽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서진정책에 일구월심 매달리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낙동강이 일군 하구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교역의 뱃길을 장악하려는 것이었다. 가야지역 말고는 곡식과 소금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데가 없었던 것이다.

 

김수로왕은 낙동강 하구에 포진한 쟁쟁한 9(: 부족국가의 왕과 같은 족장)을 아우르고 가락국 왕위에 오른 영걸이었다. 그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항상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며 왕도를 조탁했고 안으로 물산을 장려하면서 밖으로 중국과 왜국, 백제와의 교류와 교역에 힘썼다.

 

특히 나라다운 나라가 없이 수십 개의 부족국가들이 난립해 있는 일본 규슈지역으로 진출해야 하겠다는 복안을 오래 전부터 품고는 그 얼개를 짜고 있었다. 그런데 왕에게는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난제가 있었다.

 

그것은 장성한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의 장래문제였다. 머지않아 닥칠 왕위계승 때 자칫 골육상잔의 빌미가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과제였다. 더군다나 첫째 공주 야연희(倻蓮姬)의 혼사문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서둘러 매듭을 지어야 할 과제였다. 공주는 가야 6국은 물론 신라에까지 소문난 절색미인이었다.

 

신라왕실에서는 오래 전부터 비공식적이지만 태자 빈으로 삼겠다는 청혼의사를 전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먼 나라로 출가할 수 없다면서 완강히 버티었다.

 

표면적으로는 정략적 결혼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공주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것을 아는 왕과 왕후는 더는 혼사를 미룰 수 없었다. 공주가 사모하고 있는 남자는 비화가야 왕의 차비(次妃) 화야부인(花倻夫人)의 소생인 성광(星光)이었다.

 

불사국(不斯國)이라고도 하는 비화가야(빛벌가야)는 비사벌(比斯伐: 창녕)에 자리한 작은 나라로 금관가야국의 김수로왕이 6가야의 맹주가 된 후에는 사실상 신하의 나라 처지가 되었다.

 

거기에다 비화가야의 왕후는 김수로왕의 멀지 않은 인척이었으므로 왕후의 소생도 아닌 서 왕자를 부마로 맞을 경우 금관가야의 왕위계승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서 양국의 왕후가 모두 두 사람의 관계를 애초부터 꺼렸다.

 

반대로 신라 왕실과 혼척(婚戚)을 맺는다면 국태민안(國泰民安)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고 겸하여 저런 혼혐도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허 왕후는 비화가야 왕후와 입을 모아 화야부인에게 왕자로 하여금 공주를 향한 마음을 접게 하라며 압력을 넣었다.

 

김수로왕의 어의가 신라와의 혼인으로 거의 기울었을 때 신라로부터 신부의 집으로 보내는 혼인 예물인 납폐(納幣)를 받든 청혼사절이 당도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경사스러운 날 갑자기 하늘이 으르렁거리고 벼락이 내리치면서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납폐를 받아야 할 주인공인 공주마저 신열이 끓어올라 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덜컥 눕는 불길한 사태가 벌어졌다.

 

모후는 어의를 보내 진맥하고 치료를 하도록 명한 다음 신당(神堂)의 신녀 소소녀(小素女)를 찾아가 점을 치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친 신녀가 근심에 싸인 왕후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왕후마마 안심하소서. 밖의 뇌성벽력은 공주마마를 에워싸고 있는 사악한 기운을 쫓아버리기 위해 천제께서 내리신 은사이니 심려를 거두소서. 공주마마가 은애하시는 비사벌의 왕자님은 역마살이 끼어 낙동강 칠백 리 물길을 따라 떠나실 운명이라 공주마마와는 한 가닥의 인연도 이어질 수 없나이다. 그저 기다리시면 되나이다.

 

왕후가 안도할 때 신녀는 자신의 가슴속에 품은 사모하는 남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천의를 빙자한 자신의 기망에 전율했다. 그미는 가슴 속에 몰래 한 남자를 품어 종종 신녀의 영역을 벗어나 속인의 정리를 쫓아가는 것이었다. 해서 공주를 비사벌 성광 왕자로부터 떼어 신라로 출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신녀는 내친김에 한 술 더 떠서 왕후를 부추겼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공주마마가 혼인한 후 신라로 갈 때에 비사벌 차비의 둘째 왕자님을 경호무사 겸 잉신(왕녀가 출가할 때 배행하는 신하)으로 가게 하시지요. 그러면 효성이 지극한 왕자님이 어머니 차비를 생각해서 공주마마 혼사에 반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녀의 금기까지 깨면서 던진 그 조언 때문에 한 여자를 사랑한 죄로 비사벌 성광 왕자의 운명이 바뀌었으며, 신녀는 그 벌로 평생을 육정의 가시울타리 속에 갇혀 고통당하며 살게 된다.)

 

수로왕의 부름을 받고 비화가야의 왕이 달려와서 맹주의 탑전에 섰다. 옥음이 내렸다. 비사벌의 진사왕辰斯王에게는 덕음(德音)이 아니라 승장이 패장에게 던지는 말처럼 들렸다. “그대 비사벌의 왕은 진정 이 가야 맹주의 신하가 틀림없는가?” “왕이시여, 저 가야나라 어느 곳에 어느 누구가 감히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나이까?! 소신의 충성심을 의심치 마시고 성지를 받들게 하소서.”

 

허허. 과시 짐의 변함없는 고굉지신이로다. 짐이 그대를 부른 것은 공주의 혼사 때문이오. 그대가 가야 최고의 혼인축하선물을 준비해줘야겠는데 그렇게 해 주겠소?” “여부가 있겠나이까. 소신이 어찌해야 할지 말씀하소서. 소신의 머리칼로 신이라도 삼으라 하시면 삼아 바치겠나이다.”

 

고맙소. 비사벌의 성도(星道) 왕자를 공주의 잉신으로 삼고자 하오.” “성지를 받들겠사오나, 소신의 자식이 너무 혈기가 방자하여 잉신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할까 심히 저어되나이다. 통촉하소서.”

 

잉신이라 하나 범의 소굴 같은 타국으로 보내는 것이므로 오히려 호위무사의 소임이 더 막중하오. 짐이 알기로는 성도가 형인 성광에 못지않게 무예가 출중하다 들었소. 특히 마상 창술과 궁술이 뛰어나다 하니 신라 무사들의 기를 꺾기에 안성맞춤이라 혈기 방자함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오.”

 

그렇게 칭찬하오시니 소신은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하여 성도에게 근위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보검 한 자루를 하사하려하오.” “참으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비사벌로 돌아간 진사왕은 사당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분을 삭였다. 그는 수로왕한테 결코 잊을 수 없는 한사(恨事)가 있었다. 비화가야가 사실상 금관가야와 군신관계로 전락하는 와중에서 치욕적인 설움을 당했던 것이다.

 

그는 가야에 태어나 불세출의 영웅으로 가야제국을 한 나라로 묶어 한반도는 물론 왜국까지를 그 영토로 삼아 대국을 일으켰을지도 모르는 대장부였다. 그런 그가 영악한 한낱 신녀의 거짓 탁선 놀음에 운명이 뒤바뀌어 이제는 자식들마저 명 보전을 위해 잉신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기막힌 처지가 되었으니 왕인들 한 남자와 한 아버지로 돌아가 통분의 낙루를 어찌 멈출 수 있으랴!

 

아무리 극심한 희로애락일지라도 세월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야연희 공주의 신라 왕자와의 혼례도 예정대로 성대히 치러졌으며 비사벌의 성도왕자는 잉신으로 공주를 배행해 신라로 떠났다.

 

어느 날 비사벌의 사로궁 지밀에서 진사왕과 성광왕자가 다과상을 두고 독대하고 있었다. “광아, 네가 구수궁 공주의 출가로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를 이 아비는 잘 안다. 내가 옛날에 부왕께서 몰래 옥루를 흘리시는 것을 보고 결혼까지 약속한 아라가야 공주를 단념했던 일이 생각나 너의 가슴속에 고인 통분함을 나도 다시 맛보았다. 그런 비운까지 대물림을 하다니 가슴이 아프다.”

 

왕의 옥음은 비통하게 울렸다. “아바마마. 소자가 비록 부족하오나 비화가야가 지금 어떤 처지인가를 익히 알고 있나이다. 심려 마옵소서.”

 

너의 그 명쾌한 아량이 가상하구나. 그렇다. 사내대장부에겐 사랑 못지않게 평생을 타고 달려야 할 야망이 이끄는 큰 수레가 있다. 우리 비화가야는 가야제국 중에서도 작은 존재이고 금관가야에는 신하의 나라나 마찬가지다. 네가 탈 수레를 만들기에는 이 나라가 너무나 좁다.”

 

잘 알고 있나이다. 더구나 제 신분이 이 작은 나라의 왕위조차 계승할 수 없는 서 왕자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나이다.” “이제부터 짐이 하는 말을 깊이 새겨들을 것이다.”

 

말씀 하소서, 아바마마.” “가야제국의 장래는 탄탄하지 못하다. 신라나 백제가 호시탐탐 가야 땅의 병탄을 노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특히 우리 비화가야는 거열주(거창군)에서 백제와 신라와 접경을 이루고 낙동강 7백리 길을 북으로 상주 낙동나루까지 물길이 뻗어있어 언제 이웃나라 말발굽에 밟힐지 모른다.

 

네가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왕자로서 어찌 이 약소국에서 호의호식하다 비육지탄(髀肉之嘆) (중국 촉한의 유비가 헛되이 세월만 보내어 넓적다리의 살만 찌게 됨을 한탄함)이나 일삼는 신세로 살 것이냐, 저 광활한 바깥세계로 훨훨 날아가 영웅의 일생을 살도록 하여라.”

 

소자 아바마마의 은정에 감읍하나이다. 아우를 떠나보내고 외로우신 어머니를 저마저 차마 떠날 수가 없어 망설이고 있던 소자에게 아바마마가 용기를 주셨나이다.

 

소자는 불경스럽게도 태자마마보다 더 큰 야망을 품고 있었나이다. 아바마마께옵서 허락하시고 격려하시니 소자 웅비의 큰 수레를 타고 더 큰 나라로 가겠나이다. 의지할 데라고는 지아비뿐인 어머니를 더욱 은애하여 주소서, 소자 이렇게 간청하나이다.”

 

사내대장부가 큰 수레를 타기로 결심했으면 작은 수레를 버리고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이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바마마 말씀 따라 소자는 어느 날인가 달그림자처럼 아무도 모르게 사로궁을 떠나가겠나이다.”

 

짐이 여러 가지로 상량해 보건대 처음엔 사방으로 주유하며 문물을 살피고 가능한 한 많은 기재(奇才)와 의기투합하는 대장부들과 사귀되 종국에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번성하는 백제로 가야 할 것이다.”

 

소자의 생각도 또한 그러하나이다. “한 가지 당부할 게 있다.” “말씀 하소서.” “네 아우가 신라 왕실의 일족이 된 야연희 공주의 잉신이 되었으니 섣부른 소통을 하지마라. 그런 소소한 인정에 매이면 큰 수레를 탈 수가 없을 것이다.”

 

두 나라가 견원지간임을 명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전장에서 마주치거든 틈을 주어 목숨을 부지 하게 하라. 네 아우 역시 너와 칼을 맞겨누는 일은 피할 것이다.”

 

소자도 힘을 길러 두 나라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대의 실현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혹시 신라 장수 두광을 기억하느냐?” “작년 봄 신라와의 두 차례 싸움에서 겨뤘던 장수지요.”

 

그가 네게 목숨을 빚졌다며 가야와 싸울 경우 선봉장으로 와 기필코 너와 겨뤄 빚을 갚겠다고 한다. 네가 백제로 가는 터에 그의 앙심이 마음에 걸린다.” “심려 마시옵소서. 소자는 그에게 수치스러운 패배를 안기진 않았나이다. 그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명예를 제게 빚진 터입니다.”

 

하지만 그와 전장에서 마주치면 그는 적장일 뿐인 걸 명심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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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06 [19:09]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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