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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4.14 [02:04]
유영봉 ‘천년고도 경주를 찾아서(7)
 
한문학자 유영봉

당대 최고의 석공인 백제사람 아사달(阿斯達)을 불렀다.

 

비로소 보고 느꼈다. 석가탑(釋迦塔)이 얼마나 아름답고 빼어난 탑인가를. 옆에서 쌍을 이룬 다보탑(多寶塔)이 오히려 초라했다.

 

다보탑은 마치 자와 칼로 두터운 종이를 오려서 쌓아올린 양하였으니, 단단한 석재에 올린 고도의 세밀한 인공미는 혀를 차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석가탑이 지닌 그 단순미와 세련미는 결코 따라잡지 못했다.

 

정교한 비율이 주는 시각적인 우아함과 안정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고결한 여인 하나가 정갈한 품새로 단아하게 서있는 듯했으니, 이리저리 꽃단장을 한 다보탑이 저절로 누추해졌다.

 

그 옛날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金大城)은 새로이 석가탑을 조성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석공인 백제사람 아사달(阿斯達)을 불렀다. 아사달은 먼저 동탑에 해당하는 다보탑을 완성하고, 서탑인 석가탑을 만들기에 여념 없었다.

 

그 사이 세월은 흘렀고, 남편을 그리워하던 아사녀(阿斯女)는 못내 불국사로 찾아왔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 아녀자를 들여서는 아니 된다는 금기 때문에 그녀는 아사달을 만날 수 없었다.

 

천리 먼 길을 달려온 아사녀는 먼발치로나마 아사달을 볼 수 있을까 날마다 불국사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스님 하나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으니, 지성으로 빌고 빌면 탑이 완성되는 날 탑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라는 말로 위로하였다. 아사녀는 스님의 말을 믿고 그날부터 온 종일 연못을 지키면서, 수면 위로 탑 그림자만 떠오르길 기다렸다.

 

▲ 석가탑(釋迦塔)이 얼마나 아름답고 빼어난 탑인가를. 옆에서 쌍을 이룬 다보탑이 오히려 초라했다.    

 

어느 날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연못을 비추자, 물속에서 기기묘묘하게 생긴 하얀 탑 한 기가 떠올랐다. 아사달이 이미 완성시킨 다보탑이었다. 아사녀는 너무 반갑고 감격스러워 아사달님!”하고 외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움이 사무쳐 잠시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얼마 후 석가탑이 완성되자, 아사녀가 못가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들은 아사달은 한 다름에 뛰어갔으나, 아내는 영영 보이지 않았다. 아사달이 아내를 찾아 못 주변을 헤매는 중, 어느 순간 앞에 있는 바위 위로 불현듯 아사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는 아사달을 향해 방그레 웃던 아사녀의 형상이 차츰 사라지더니,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이 뒤따라 떠올랐다. 아사달은 마침내 바위 위에 아내의 모습을 새긴 뒤,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뒷날 그 연못을 영지(影池)’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못에 그림자가 비쳤던 다보탑을 유영탑(有影塔)이라고 불렀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던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불렀다.

 

아사녀의 넋이 깃들었는가? 가슴시리도록 고아한 석가탑 주변을 얼마나 맴돌았는지 모른다. 그 바람에 불국사의 곱디고운 단청 역시 무색해지고 말았다. 석가탑 하나만으로 불국사 구경은 다한 셈이었다.

 

그리고 당도한 석굴암(石窟庵). 신라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양, 석굴암의 부처님이 지닌 표정은 편안하고 너그럽기 한량없었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가피는 넓은 어깨와 살진 품새에 넘쳐났고, 흘러내린 옷 주름에서 그침 없었다. 역시 신라의 자랑 아닌가?

 

임자 잃은 장항리의 폐탑을 지나면, 마주하는 냇물이 대종천(大鐘川)이다. 이곳에는 신라의 꿈이 아직도 전설 속에 묻혀있다. 고려 시대였던 1238(고종 25)의 일이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황룡사의 구층탑이 불에 탔다.

 

당시 황룡사에는 에밀레종 곧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보다 네 배가 넘는 100톤 무게의 큰 종이 있었다. 몽고군은 이 종을 자신들의 나라로 가져가려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종을 실은 배가 동해로 나가마자,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 종과 배가 모두 바다 밑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 후로 풍랑이 심하게 이는 날이면, 큰 종이 울리는 소리가 일대에 들려왔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주변 마을의 해녀들이 물속에서 대종을 보았다고 하지만, 대종은 아직도 찾아내지 못했다.

 

전설은 다시 감은사지로, 대왕암으로 연이었다. 감은사 법당 아래 조성된 수로를 확인한 후, 검푸른 동해의 물결 속에 하얗게 엎드린 대왕암을 마주하자니,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文武王)의 결연한 꿈이 한 마리의 용으로 꿈틀거렸다.

 

도중에 들른 골굴사(骨窟寺) 역시 지나칠 때마다 빠뜨리지 못하는 곳이다. 독특한 지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석굴암이라고 주장하는 이곳은 눈부터 즐거운 탓이다.

 

오늘날에는 선무도(禪武道)의 수행 도량이라고 이름을 내세우지만, 원효 대사가 열반에 들었다고 전해지는 혈사(穴寺)’로 비정된다는 점 또한 간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량의 머리를 청송으로 돌렸다. 주왕산과 주산지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주왕산까지 2시간이 걸렸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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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3 [23:02]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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