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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4.14 [02:04]
<土曜 隨筆>백임현 ‘나의 삶 나의 수필’
“그들의 절실한 현실과 삶의 모습이 있을 뿐”
 
수필가 백임현

첫 글은 거지라는 짤막한 작문

  

▲ 수필가 백임현 

내가 어렸을 때, 처음 써본 글은 거지라는 제목의 짤막한 작문이었다. 자기가 쓴 글을 앞에 나가서 읽는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거지라는 제목을 듣자 아이들은 갑자기 교실이 떠나갈 듯 와르르 웃으며 법석을 떨었다.

 

모처럼 써 가지고 간 글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나는 너무도 무안스럽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기어코 울고 말았다. 그때 아이들은 왜 웃었을까. 두고두고 생각해도 그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아이들은 웃었지만, 선생님은 잘 썼다고 칭찬해주셨고 복도에까지 붙여놓으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셨다. 무엇 하나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나는 처음으로 쓴 거지로 인해 조금 유명 (?) 해지자 그때부터 글짓기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고마운 거지였다.

 

내가 성장하던 그 시기는 시국이 어지럽고 궁핍한 시대였다. 조국의 해방, 분단과 이념의 갈등,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전쟁, 극심한 빈곤, 이러한 역사적 격동과 사회적 환경 속에서 거지 아닌 사람들의 생활이라고 해서 별반 나을 것도 없었다.

 

내가 거지에 대해 글을 쓸 무렵 우리 집도 일곱 식구가 끼니 걱정을 하며 힘들게 살 때였다. 대종가의 종손이었던 아버지는 해방 후 단행된 토지 개혁으로 많은 토지를 경작자인 소작인들에게 넘겨주고 졸지에 대책 없는 가난뱅이가 되셨다.

 

고생을 모르고 사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닥친 빈곤에 대처할 만한 현실적인 능력이 없었다. 더러는 끼니를 걸러야 했고, 또 더러는 공부도 중단해야 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난은 숙명처럼 내 생애에서 떠날 줄 모르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부친은 교직에 계셨던 청빈한 학자

 

아버지는 평생을 교직에 계셨던 청빈한 학자였다. 밥을 굶는 상황에서도 새벽마다 성현의 글을 읽으시며 우리의 아침 잠을 깨웠고, 우리가 책을 안 읽으면 흐르는 물은 썩는 법이 없다.”며 피난 시절에도 책 읽기를 독려하셨다.

 

그러나 청빈이라는 수사의 그늘 밑에서 우리 가족은 극심한 빈곤을 뼈저리게 체험해야 했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겪은 무서운 전쟁의 비극성은 우리의 삶이 고단한 길이라는 것, 어쩌면 인생이 기쁨보다는 힘든 고해임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 젊은 시절을 염세적 허무주의 속에서 우울하게 보내야 했다.

 

중학생 때 이웃에 살던 언니는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하이네, 바이런, 괴테 등 서양 시를 고운 목소리로 읽어주면서 나에게도 시를 쓰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시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 좋았고, 쓰고 싶은 것도 시보다는 소설이었다. 그 시대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산문적이어서 시적 환상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60년대 초, 교사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 놓고 책을 사 읽을 형편은 아니었다. 서울 변두리 단칸방을 전전하면서 시장의 영세한 책방을 드나들며 읽고 싶은 책을 대본해 보았고, 문예지 현대문학을 읽고 일기를 쓰고. 살림하는 주부가 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틈틈이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에 아기를 업고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책을 읽었고, 한 손으로 일할 때는 다른 한손에 책을 들고 빌려온 책을 읽었다. 이렇게 인생의 고비 고비를 함께한 문학은 고단한 내 삶의 위안이었고, 나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자존심이었으며, 꿈을 향한 애잔한 기원이기도 하였다.

 

가수 신중현! ‘옥이 이모의 김운경

 

나는 가수 신중현을 좋아한다. 허기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기타를 치고, 서양의 음악에 한국인의 정서와 가락을 접목시켜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가요를 정립한 전쟁고아 신중현,

 

그의 음악을 들으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의 철저한 장인 정신과 예술을 향한 치열한 도전의식이 감동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다.

 

또한 옥이 이모를 쓴 김운경의 작품을 보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김운경의 드라마에는 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과 고운 꿈이 있다. 그들은 교회의 유창한 설교 한번 들은 적 없어도, 유식한 인생 강의 한번 들은 바 없어도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와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

 

너무 가난하여 싸구려 신발 한 짝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 십 원짜리 내기 화투를 치며 핏대를 올리면서 잠시나마 고달픈 현실을 위로받는 사람들 이야기, 연탄장수와 구멍가게 딸내미와의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김운경은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작가의 따뜻한 가슴과 섬세한 시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김운경은 작가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얼마나 치열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얼마만큼 인생을 사랑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신중현의 음악을 들으면, 김운경의 드라마를 보면 늘 이런 고민에 빠진다.

 

나는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이제까지 다만 문학을 좋아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어떤 여건에서도 이것은 흔들림이 없었다.

 

내가 만일 농부(農婦)였다면 콩밭을 매는 밭이랑에서 글을 구상했을 것이고, 공장의 노동자였다면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서 문장을 외웠을 것이다. 살림을 하는 주부였기에 나는 시장 길을 오가면서 글을 구상했다.

 

▲ 험난한 세상에서 그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며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있어 내 인생은 풍요롭고 부유했다.   

 

삶이 곧 문학이었기 때문이다.

 

새봄이 되면 주택가에는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 곳이 많다. 주택가의 봄은 언제나 집 짓는 사람들의 활기찬 고함소리와 힘차게 돌아가는 레미콘의 굉음 소리로 시작된다. 나는 그 현장이 좋아 시장을 갈 때마다 호기심 많은 아동처럼 한참씩 서서 구경하곤 하였다. 거기에는 뭔가 희망적인 설렘이 있다. 그래서 쓴 글이 집을 짓는 사람들이다.

 

시장에는 정직한 삶의 실체가 있다. 변성기도 아닌데 날마다 소리를 쳐서 벌써 어른처럼 음성이 쇠어버린 나이 어린 생선장수. 너무도 잘생긴 사장 같은 사람이 납작한 판잣집에서 온종일 팔리지 않는 빵을 굽는 권태로운 모습.

 

평생을 서민 주택가에서 그들의 애환을 목격하며 살아왔기에 나의 작품세계는 그들의 절실한 현실과 삶의 모습이 있을 뿐, 고도의 관조나 명상적인 것이 없다. 삶이 곧 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흰 백지 앞에선 언제나 자신 없는 초보다. 당나라의 불우한 시성 두보(杜甫)만 권의 책을 읽으니 붓끝에 신이 오른 듯 시가 써지더라.”고 하였다.

 

감히 그런 경지는 될 수 없지만 내가 쓰는 단 한 편의 수필이, 단 한 줄의 문장이 민들레 씨앗처럼 누구의 가슴에서 꽃처럼 살아나고 쥐똥 나무꽃 같이 숨어서 향기로운 글이 되기를 감히 꿈꾸며 오늘도 글을 생각한다.

 

어린 날 거지로부터 시작된 나의 문학은 결핍과 고난의 소산이었다. 내가 만일 태평한 시절에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험난한 세상에서 그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며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있어 내 인생은 풍요롭고 부유했다.

    

 

프로필

1987동서문학으로 등단.

현대수필상 수상(1999)

황의순 문학상 수상(2013)

수필집: 놓치고 사는 기쁨(1999)

아침소리(2002)

강촌에 가고 싶다(2009)

텃밭에 머무는 사계(2013)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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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4/07 [22:37]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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