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안 ‘역대 최저의 증가율’ 원인은?
정부는 지난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예산안이 내달 초 국회에 제출되면 국회 각 상임위원회 및 예산결산특위 감액·증액 심사를 거쳐 오는 12월 최종 확정된다.
2024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2023년 638조7000억원보다 2.8% 늘어난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그러나 총수입은 올해(625조7000억원) 대비 2.2% 감소한 이례적 적자 상태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올해 예산의 지출 증가율(5.1%)보다도 크게 낮은 증가 폭이며,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최소 증가 폭이다. 지난 6월 말 재정전략회의에서 보고된 ‘4%대 중반’보다도 2%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치다. 유례없이 세수가 걷히지 않아 4%는 물론 3% 증가율도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국세 수입이 급감한 것은 전문가들이 이미 예견했듯이 ‘대기업 기득권 위주’의 감세정책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법인세, 종합부동산 감세 등 2년간 13조7000억원의 세금을 감면했지만 수출감소, 자산시장 위축이 이어지며 세수 증가는 아예 기대할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에서 이례적으로 삭감한 것은 R&D 예산과 교육부문 그리고 새만금 SOC 시설 사업 부문이다. 먼저, 우리나라 R&D 투자는 18년 19조7000억원, 19년 20조5000억원에 이어 20년 24조2000억원, 21년 27조4000억원 22년 29조8000억원, 23년 31조1000억원으로 연평균 10.9%의 증가율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 줄어든 25조9152억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주요R&D’ 21조5000억원에다 기획재정부가 추가 편성한 ‘일반R&D’ 4조4000억여원을 더한 금액이다. 주요R&D 예산 삭감률(13.9%)보다 일반R&D 예산이 더 큰 폭으로 삭감된 모습이다. 기재부는 나눠먹기·관행적 지원 사업 등 비효율적인 R&D는 구조조정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방침이다.
다음으로 교육 예산 또한 올해 96조3000억원에서 내년도 89조7000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현 정부는 내국세의 20.79%를 자동으로 초·중등교육에 투입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 중인데, 이번 교육 예산 감소는 이와 무관치 않다.
특히 새만금은 정부의 새만금 기본계획(MP)에 반영된 주요 SOC 시설 10개 사업 예산은 중앙 부처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총 6626억원 규모로 편성됐으나, 기획재정부 심사 과정에서 5147억원(77.7%)을 대거 삭감해 결국 최종 정부안에는 1479억원만 반영됐다. 새만금 사업은 잼버리와는 무관하게 국가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인데도 재정 당국은 잼버리를 파행을 구실로 새만금 예산을 싹둑 자른 것이다.
지난 8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해 “정부 곳간 수입은 거덜내고 있고 약속한 재정준칙은 지키지도 않으며 미래대비 투자나 민생사업 예산도 사실상 줄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올해세수와 내년세수가 크게 감소하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대규모 감세기조에 따라 세입기반이 훼손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무능한 재정운용으로 곳간이 거덜 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또 “대통령은 건전재정과 재정준칙을 강조했고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60%이하일 때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스스로 약속한 재정준칙도 지키지 못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전년 대비 1.3%포인트(p) 증가할 것이라는 기재부 예측은, 정부가 그동안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한 약속을 담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은 채무비율이 GDP 대비 60%를 넘어가면 적자 폭을 2%로 축소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 재정준칙 법제화 선결요건들
내년 총수입 예산이 크게 줄어들면서도 복지 등 씀씀이는 크게 줄일 수 없어 실제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90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수입이 크게 줄다 보니 윤석열 정부 마지막 해인 오는 2027년 국가채무는 1400조 원은 기정사실화 된다.
세수는 줄고 나라살림은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134조4000억 원(국가채무비율 50.4%)에서 내년 1196조2000억 원(51%), 2025년 1273조3000억 원(51.9%), 2026년 1346조7000억 원(52.5%), 2027년 1417조6000억 원(53%)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7년 660조2000억원, GDP(국내총생산) 대비 36%였던 국가채무는 2022년 말 1067조7000억원(GDP 대비 49.6%)까지 늘었다. 규모와 비율 모두 최고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2026년 66.7%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21년 기준 OECD 38개국 중 35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시행하고 있으며, 그 중 29개국은 재정준칙이 법제화되어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복지지출을 하는 스웨덴, 핀란드는 우리보다 더 강한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튀르키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재정준칙을 미도입한 국가이다.
현재 피치·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와 OECD, IMF 등 국제기구는 우리나라의 재정준칙 법제화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법적 근거를 구비하는 것은 재정준칙의 신뢰성 확보에 핵심 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부채 증가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빠를 뿐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등 재정 리스크 요인도 상당하다. 실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8년에 이미 감소세로 전환됐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폭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곧 세수 감소로 이어지게 되며, 이에 따라 정부의 가용재원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 복지지출 수요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 재정지출 규모는 2020년 14.4%에서 2060년 27.6%로 약 2배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패권경쟁’과 그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블록화’ 등으로 인해 이미 대중국 무역적자가 급격히 확대되는 등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재정준칙 법제화 과정은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야합의로 재정준칙의 조속한 법제화와 함께 적극적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건전재정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연착륙시키려면 세원발굴과 확충에 따른 세수의 증가의 다각적 대책이 요망된다.
집권 여당과 기획재정부의 주장처럼, 미래의 인구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지출 확대 등을 고려하여 과도한 재정지출을 억지하기 위한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수긍하더라도,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부문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집권여당과 기획재정부는 구문이 되어 버린 신(新) 자유주의자들의 ‘규제철폐’와 ‘낙수효과’에 기대어 시장의 자유만 공허하게 합창할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재정능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조세부담의 여력이 있는 재벌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적절한 증세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재정정책’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
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