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랜만에 “아버지!”하고 하늘 향해 큰 소리로 외쳐 봅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저 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아버지를 자주 잊고 살면서 기일이 돼서야 아버지를 떠올려 보는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단 한 번 편지를 써보지 못하고 이제 처음으로 쓰고 있는 참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옵소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본향이신 하늘로 가신 지 어언 9년이 흘렀습니다. 살아생전에 늘 본향을 그리워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세상이 고향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본향이라며 늘 하나님이 우리를 굽어보신다 하셨습니다.
본향을 바라보면서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던 어린 날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아버지께서 본향으로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아버지가 늘 제 곁에 함께 계신다는 착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 후로 1~2년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졌습니다. 그 후로 저의 정신적 지주이신 아버지께서는 늘 저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희 형제들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기억창고 한켠에 저장해 놓고 종종 꺼내 봅니다. 삼 형제가 잠자리에 누우면 잠들기 전까지 매일 밤 옛날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은 아주 많았었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이야기는, ‘거꾸로 나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 등등 셀 수 없이 많았지요. 이 이야기들 속에서 아버지께서는 늘 ‘성실과 정직’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만 본향인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거라고요, 그리고 이를 꾸준히 해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이 세상에 탄생하게 해 주셨지만, 또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제가 7살 때 동네 형들과 방죽으로 썰매를 타러 갔다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때 아버지께서는 제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와서 옷도 벗지 않고 뛰어들어 저를 구하셨습니다.
저는 이미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형들을 통해 아버지께서 구해 주셨다는 걸 알았지요. 형들이 호수 가운데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저는 괜찮다면서 썰매를 들고 호수 안쪽으로 갔습니다. 가운데쯤 갔을 때 얼음이 깨지고 제가 물속으로 몇 번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는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합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온몸이 다 젖은 상태였고,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혼날 생각밖에 들지 않아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를 품에 꼬옥 안아 주셨습니다. 그날 아버지 품에 안겼었던 따스한 체온은 아직도 제 심장 깊은 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에게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커다란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어느 날, 세상에서 제일 큰 연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창호지와 대나무와 풀을 준비하셨습니다.
대나무를 다듬어 창호지에 붙여서 안방에 들어가는 여닫이문만큼 큰 연을 만드셨습니다. 안방 문처럼 큰 방패연이니 잘 날지 못했습니다. 실망감으로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얼레를 붙들라고 하시면서 실을 당겼다 풀었다 하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올리시면서 제게 멀리 뛰라고 하셨고,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와 함께 연을 올리려고 언덕에서 무지하게 뛰었습니다. 그 큰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 우리는 ‘와 !’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큰 방패연도 바람을 거슬러 오르고 바람의 방향을 잘 타고 바람과 호흡을 맞추면 멀리 잘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연을 날리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육십 평생 살아가면서 좌절과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날의 방패연을 날리던 추억이 큰 힘이 되어 주었고, 큰 용기를 주곤 하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또한 물가에 살면서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수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면서 무더운 여름엔 한강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은 밭에서 수박과 참외를 잔뜩 따서 들고 갔습니다.
해병대를 나오신 아버지는 수영을 참 잘하시고, 또 많은 사람에게 물에 뜨는 법과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때 물에 빠져 죽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마 그때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지요.
아버지!
아버지는 찬송을 참 좋아하시면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이 노래를 기쁨으로 부르실 때 얼굴이 빛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찬송하시면서 참으로 평온하신 아버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웃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이라는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유머가 많아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기도 하고, 정직과 성실한 사람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기에 누구보다 저는 아버지를 존경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아버지가 보고 싶군요. 언젠가는 다시 만나서 그때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제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겠지요. 당신 손자인 제 아들 민주와 민규도 벌써 이십 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듬직하게 잘 자랐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 녀석들을 보면서 할아버지와 닮은 성정이 보여서 미소를 띨 때도 있답니다.
아버지!
제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날 아버지를 만나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아버지 등에 업혀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서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계시옵고, 가족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세요.
맏아들 현철 올림
원본 기사 보기:
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