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러 제2차 정상회담’ 곧 열리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북조선의 김정은 총비서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9월 6일 러시아정부 관계자는 일본 NHK에 ‘북러 정상회담’을 조율 중에 있음을 시인했다. 앞서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 9월 4일 북조선의 김정은 총비서가 동방경제포럼 행사가 열리는 9월 10일에서 13일 사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 2차 정상회담은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섬에 있는 대학과 군 관련시설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푸틴과 김정은 양국 지도자는 2019년 4월 첫 정상회담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진바 있다.
금번 정상회담은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해주는 대신 북한이 필요한 군사위성, 핵잠수함 기술과 식량 지원 약속 등을 받아낼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은 작년 12월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인 와그너 그룹에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들어 북한과 러시아 관계가 급속도로 밀착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전승절’ 부르는 지난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에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북한에 강경 입장을 보이는 미국의 바이든과 한국의 윤석열 정부 및 한동안 중단됐던 한미 연합 훈련 재개가 미사일 도발의 주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한 미·러 갈등이 북러 밀착을 한층 부추기고 있다. 북·러 관계가 강화되면 러시아가 얻을 이익보다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은 연이은 핵미사일 발사에 대북재제로 외교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해졌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답보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 세계가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주시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다. 군수품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약과 무기, 군복까지 제공받았다는 보도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러시아는 2022년 1월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에 중국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것을 시발로, 대북 비난 결의나 신규 대북 제재 결정을 수시로 저지하고 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2022년 9월 푸틴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네 개 지역, 즉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를 러시아 영토로 합병한다고 선언했을 때 북한은 즉각 이를 지지하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다.
● ‘교통‧식량‧경협’ 이례적 복원
지난 수년간 북한과 러시아는 교역확대, 비자간소화, 교역에 있어서 루블화 결제 등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지원이 끊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러시아는 북·러 협력에 최대 걸림돌로 남아 있던 북한의 채무를 탕감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014년 러시아 의회 하원은 북한이 과거 소련으로부터 빌렸던 11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를 탕감하고 나머지 10억 달러는 20년 거치로 상환받는 협정을 비준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핵무장의 대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초강력 제재를 받음에 따라 식량, 석유, 의약품 등 사회 필수품이 매우 부족한 국면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은 주로 중국을 통로로 활용해 제재를 무력화시켜 왔는데, 이제는 러시아로 통로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북한에 정제유 수출을 재개하고 밀가루도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6월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러시아가 2년 3개월 만에 북한에 정제유 수출을 공식 재개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와 원조를 제공한 대가로 대북 정제유 수출이 전면 허용된 것이다.
또한 2017년 10월 이후 북한-러시아 간 철도도 2022년 11월부터 다시 운행이 재개되었다. 북한의 라선시 선봉구역 위치한 두만강철교를 통해 러시아 철도 바라놉스키 하산역과 다시 연결된 것이다.
이와 관련 북러의 급속한 밀착에 중국은 어떠한 속내를 보이고 있을까? 미중간 ‘경제와 군사’ 갈등의 비화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기에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와 제반 협력에는 상당히 주저할 수밖에 없다.
우선 상징적 조처로 북한의 9·9절 열병식과 러시아 동방경제 포럼에 파견하는 중국 대표단의 격을 대폭 낮추었다. 지난 2018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에 중국은 권력 서열 3위인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특별대표로 보낸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당내 서열 24위권에 그치는 정치국 위원이자, 국무원 부총리 4명 가운데 맨 마지막인 류궈중을 단장을 파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과 푸틴의 재회 장소로 알려진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도 부총리를 보낼 예정이다. 작년엔 당시 국회의장격인 리잔수가, 2018년엔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석한 행사이다.
무엇보다 북러 결집이 자국의 대북 영향력 축소로 이어지거나 한미일 공조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과 대북 제재 위반에 분명히 선을 긋겠단 뜻을 시사한 조치로 해석된다.
● 북러 관계 ‘더욱 밀착되지 않도록’
때마침 지난 9월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모든 유엔 회원국의 안보리 결의 준수 필요성과 결의 채택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무거운 책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핵, 미사일 개발의 주요 자금원인 가상자산 탈취, 해외노동자 송출, 해상환적 등 북한의 불법행위를 적극 차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향후 북한과 러시아가 어느 수준까지 관계를 밀착해 들어갈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아울러 중·러 연대는 여전히 견고한 듯 보이지만, 중국이 향후 러시아를 어떻게 대할지가 북·러 관계를 예측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그동안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과 남북러 삼각 경협을 지렛대로 삼아 북핵 문제 해결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끌어내려던 한국의 대러 외교 기본 틀은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러시아는 북핵이 주는 위기보다 미국으로부터 오는 지정학적 도전을 더 큰 위협으로 본다.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어 우리가 러시아와 협력은 추후 수많은 난관과 복병이 산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과 일본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윤석열식 외교의 결말은 북러관계를 더욱 가깝게 할 것이다. 북러 관계가 급속히 밀착해지면 북핵 문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급속히 악화된 여건 속에서도 한국은 북핵을 논의하는 장에서 러시아를 배제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가 중요하다. 러시아의 지지 없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는 무척 어렵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우리 정부가 북러 관계 밀착 조짐을 세밀히 파악하고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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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