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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1.22 [19:35]
'아날로그-디지털' 'GP에서' 대충돌
<한상렬의 시사평론> 문학평론가 '새로 쓰는 서울의 찬가'
 
한상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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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교교했다. 어둠 속에 만상이 파르르 떨며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고요한 밤. 어둠을 헤치고 이내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전방을 주시한 지 두어 시간. 차츰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쏟아지는 졸음을 쫒아내기라도 하듯 m1소총의 개머리판을 더욱 어깨 쪽으로 밀착시켰다.

언제 어느 곳으로부터 적이 불쑥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온통 신경이 전방을 향했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수도 서울에 잠입한 이후 전선은 그야말로 전쟁 전야를 방불했다.
 
군화도 벗지 못하고 소총을 옆구리에 낀 채 침상에 누워있다 경계근무에 나선 것이다. 방한복을 껴입고 벙어리장갑을 끼었건만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듯했다.  

그때였다.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가 확성기를 통해 산야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게 막막했다.

1968년 1월. 적근산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입대를 조금만 연기하였어도 군복무를 면제받았을 때였다. 그러나 굳이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조국애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그 이유가 전부였다.

적근산에서 대성산을 오르내리고, 철책선에서 때론 비무장지대까지, 정확히 36개월 만에 나는 제복을 벗고 다시 교단으로 돌아왔다. 휴가라고 해야 겨우 두 번. 그것도 첫 휴가는 14개월만이었으니, 당시의 내 사정을 구태여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군대에 두 아들을 보냈다. 아비 시절의 군대와는 영 딴판인 현대화된 군대라고 했다. 하지만 자식 걱정을 하지 않을 부모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으랴. 그저 건강하게만 복무하다 돌아 오거라. 그렇게 빌었다.

큰 아이는 다행하게도 집에서 가까운 부대에 배속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장교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그 말이 내게 심상하게 들릴 리 만무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구타를 당한 것보다도 더 가슴이 아팠다.

겉으론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면서 지난날을 떠올렸다. 자대에 배속을 받고 선임병들에게 적지 아니 시달림을 당했다. 취침 후엔 예정된 수순처럼 툭하면 집합 소리에 군장을 갖추었고, 선착순 집합에 참여했다. 선임병의 기분에 따라 행해지던 그런 통과의례에도 차츰 익숙해져갔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그리 후레아 같은 고참병들의 행패에도 시계는 잘도 돌아갔다.

그뿐인가. 철책 근무 시절엔 눈치 없이 부식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이웃 부대 소대장에게 한낮 분풀이 대상이 된 일도 있었다. 나는 사병이었지만 그는 나보다 나이 어린 간부후보생 장교였다. “계집애같이 생긴 놈이…” 그게 이유였다. 대학을 나와 교단에 있던 내가 그의 눈에는 가시와 같이 보였는가.

상명하복의 군대. 비록 상대의 행위가 타당성이 없다하더라도 감히 누구에게 맞설 것인가. “이놈 제대 하는 날, 어디 두고 보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제대하는 날 뛰어와 인사하는 그를 향해 나는 그저 웃어버렸다.

그건 내 일이었지만, 그러나 자식의 일에서는 그런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아니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 하면서도 가슴에는 찬 바람이 일렁였다.

첫째가 무사히 제대하고, 둘째 아이가 입대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아이는 주특기가 전공과 관련한 화학병이었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최전방 부대에 배속되었다. 집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인 것이 그저 다행이었다. 입대한지 1년여가 지났다.

아이가 교육 중 최우수상을 받아 포상휴가를 나왔다. 얼마 후에는 상병 진급을 하고 비무장지대 근무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그리 괘념할 일이 아니었다. 병사들을 제 자식같이 위하는 상급자들이 있어서였다.

아이가 귀대하고 1주일여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아이의 부대로부터 대대장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왔다. 뜻밖이었다. 민간지원을 나갔다가 추락하여 사고가 났으니, 급히 분당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퍼뜩 집히는 게 있었다. 해병대에 입소한 아이의 단짝 친구가 훈련을 마치는 날 먹은 것이 탈이 나 급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지 며칠 뒤였다. ‘내게도 불행한 일이 찾아 왔구나!’ 했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수술이 진행되는 서너 시간, 그 길고 긴 시간은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보다 더했다. 응급실에 옮겨진 아이가 눈을 뜨고 한 말은 “아버지, 저 수술해야 하는데요.” 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지그시 잡고 “얘야, 수술은 벌써 끝났단다. 아주 경과가 좋다는구나! 걱정하지 마라.”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였으랴.

지휘 계통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민간지원 봉사라는 미명 앞에 병사들을 무방비로 내맡긴 결과는 아니었을까 싶었다. 무너진 축사위에 대책 없이 올라가 작업을 하던 아이가 추락하였다면, 그 잘못이 과연 누구에게 있었겠는가.

언론에 호소라도 해야 할 중대 사안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환후가 더 중요했다. 다행한 것은 수술 결과가 양호하여 별 이상이 없을 듯했다. 물론 후유증을 염려해야하겠지만, 부대장이나 관계 인사들의 마음도 십분 헤아려졌다. 나는 그들에게 아이의 호전을 위해 기도나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거지반 6개월을 넘겨서야 의병 전역하였다      

요즘 뉴스 초점에 군 사고가 연일 방송되고 있다. 경기도 연천의 어느 전방감시소초에서 군 복무중인 일등병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전우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국군수도병원 영안실에 분향소가 차려졌지만, 유가족들은 사고 경위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군 당국의 발표를 들으면, 고참병의 언어폭력을 원인으로 보도하더니 가해병사의 성격적 결함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 유가족들도 한시름 놓았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든 사고를 바라보는 여론의 향방도 여러 갈래일 밖에 없다. 때마침 텔레비전은 논산훈련소의 입영장면을 함께 보도하면서 자식을 입대시키는 부모들의 걱정 어린 표정을 담고 있다.

유가족들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생떼 같은 자식의 주검 앞에서 담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 저마다 내 자식만은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입영훈련소로 보낸다. 하지만 사고란 때 없이 찾아오는 일, 그래 제대하는 날까지 부모의 애간장을 태운다.

이런 부모의 마음이 자식의 입영을 기피하게도 하지 않는가 싶다. 지난 대선 때를 돌아보라. 자식의 병역문제로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그게 바로 우리의 정서임에 분명하다. 그뿐인가. 얼마 전 뉴스에는 한국국적을 포기한 인사들의 이름이 거명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네들이 제 나라의 국적마저 포기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군대에 가는 일을 피하게 위해서일 게다. 소위 가진 이, 있는 이들이 솔선하여 벌이는 행태가 더욱 대중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이 혹여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제 자식만을 두둔하는가 싶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사람들일수록 조국애를 운위하지 않던가.

과거에 비하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한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두가 이전과 비교하면 안 될  정도요, 구타와 가혹 행위 같은 것은 사전에나 있다고 한다. 이는 변화일 것이다. 인터넷과 게임을 즐기고 자기중심적이고 자유분방한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지냈던 옛날 방식이 통할 리 없다.

이런 새로운 사고가 통제 문화와 맞부딪힐 때 부작용을 낳을 것은 자명하다. 디지털 병사와 아날로그적인 군대의 코드가 조화를 이루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겠다. 군당국도 국민도 자성할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자식을 강하게 키워야겠다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치만은 않다. 훈련이 너무 힘들다고 탈영한 훈련병이나, 애인이 보고 싶다고 탈영한 병사나, 휴대를 나왔다가 귀대하지 않는 병사들의 소식이 심심찮다.
 
그렇다고 신세대 사병의 취향에 무조건 맞출 수는 없는 일이겠다. 모름지기 군인이란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과 어려운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 의식의 개혁이 있어야 하리라. 아니, 남자라면 마땅히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면서도 제 자식의 일에서는 예외를 두려는 부모들의 이중 잣대도 거둬들여야 하지 않으랴 싶다.
 
지금도 가끔씩 전선의 봄이 떠오른다. 겨울이면 문득문득 적근산이며, 대성산의 겨울을 떠올린다.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가 들려오는 듯해서다. 이제는 서울의 찬가도 다시 써야하려나 보다.      

 
◇ 문학평론가(수필가) 한상렬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천협의회 회장. 제물포수필문학회 회장. 현대수필창작아카데미대표. 인하대학교 수필창작반 및 mbc롯데 수필창작반 지도교수. 
 
저서에 수필집 ‘손해보며 사는 사람’ 外 11권, 문학평론집 ‘디지털시대, 수필문학의 패러다임’ 外 10권, 창작론 ‘수필문학 바로보기’‘수필창작과 읽기’등 50여권이 있음. 
 
인천문학상, 인천문화상, 신곡문학상, 문예한국문학상 본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본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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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6/29 [13:33]  최종편집: ⓒ 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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