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50도 뜨거운 물이 분출하는 환경에서
세균에 의존하는 커다란 관모양의 생물서식 생물학 역사상 가장 흥분되는 발견 중의 하나는 1977년도이다. 해양학자들이 잠수정 앨빈 호를 이용하여 동부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 부근 해저 산맥에 있는 심해 열수구 지역을 집중 탐사했다. 이들은 태양 에너지가 전혀 도달하지 못하는 그곳에서 뜻밖에 생물의 군집을 발견했는데, 처음 보고되는 새로운 생물이었다. 이후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열수 분출구를 대상으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드디어 조사하가 힘들어 베일에 가려있던 남극해 열수 분출구에서도 똑같은 생물이 발견되었다. 2010년 알렉스 로저스 옥스퍼드대 교수 등 영국 연구진이 무인 잠수정 이시스 호를 동원해 남아메리카와 남극대륙 사이의 대양저 산맥을 탐사했다. 잠수정이 보내오는 2600m 심해저의 독특한 생물상은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대륙이 확장하는 대양저 산맥은 새로운 지층이 생성되는 곳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흘러나와 물을 데우며 광물질이 풍부한 시커먼 열수가 굴뚝처럼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다음은 해양과학자들이 연구하고 밝힌 놀라운 실상을 생생히 공개하여 본다. 공통적으로 수천 미터 깊이의 심해저에 있는 열수구 지역은 지각 활동으로 인해 흘러나오는 뜨거운 용출수 때문에 온도가 무척 높다. 이곳에서는 검은 연기처럼 섭씨 350도의 뜨거운 물이 분출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뿜어내는 화학물질들이 박테리아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며 이들과 공생하는 커다란 관모양의 관벌레들이 집단 서식한다. 이들 심해 열수구 지역에서 동일하게 발견된 것이 '리프티아'(riftia)라고 불리는 커다란 관벌레이다. 리프티아는 매우 독특한 생체 구조로 인해 입이나 소화 기관인 장(腸)이 없다. 그 대신 '영양체'라고 불리는 매우 특수한 기관이 있는데, 그 안에는 세균이 가득 차 있다. 리프티아의 몸통은 기다란 관의 안쪽에 들어 있다. 관의 바깥쪽으로 돌출된 밝고 붉은색의 깃털구조는 아가미와 같은 역할을 하며, 이산화탄소와 산소, 그리고 황화수소를 교환한다. 관벌레의 순환계는 매우 잘 발달되어 있고, 순환계 속의 혈액은 황화수소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특수한 헤모글로빈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관벌레는 황화수소를 세균에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그 세균들은 화학 합성을 통해서 관벌레에게 먹이가 될 유기물을 공급하며, 관벌레는 세균이 필요로 하는 황화수소를 비롯한 무기물을 공급한다. 이런 일련의 작용이 상호 연속하여 이루어진다. 리프티아는 키가 2m 넘게 자라나지만, 박테리아에게 자기 몸을 내주어 키운 뒤 다시 그 박테리아를 포식하고 에너지를 얻는 매우 특이한 방식의 공생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열수분출공 주변을 가득 메운 거대한 관벌레 리프티아는 마치 장미정원 같다. 붉게 보이는 이유는 혈액 속에 헤모글로빈이 다량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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